240922 동수교회 주일 예배 실황 영상 "목숨을 아끼지 않은 사람"

작성 동수교회
날짜 2024-09-21
설교한 날
2024/09/22 일
성경 본문
빌립보서 2:25-30
설교
주학선 목사

<온라인 주보>

온라인 주보를 보기 원하시는 분은 <온라인 주보>를 클릭해주세요.

목숨을 아끼지 않은 사람(빌립보서 2:25-30)

1. 환영과 찬양

◾ 기쁨으로 서로 환영하며 축복합니다. 잠시 교제의 시간을 가집니다. 

◾ 찬송 39장 ◾  복음송 원하고 바라고 기도합니다

◾ 기도 맡은이 혹은 합심기도

2. 먼저오심 

1) 지난 한 주간의 이야기(행복, 고마움, 힘듦)를 서로 나눕니다.

2) 지난 한 주간 어떤 기도를 했는지 서로 이야기합니다.

3. 만나주심

◾ 성경본문 : 빌립보서 2:25-30

이제 바울은 에바브로디도를 빌립보 교회로 보낼 필요가 있다고 합니다. 에바브로디도는 빌립보 교회에서 매우 신임을 받았던 사람입니다. 바울이 로마에서 감옥생활을 하는 동안 빌립보의 그리스도인들이 바울이 필요한 것들과 헌금을 전해주고, 옥바라지를 해줄 사람을 찾았는데 에바브로디도가 기꺼이 나서서 그 일을 맡았습니다. 

몹시 걱정한 이유

그런데 바울을 도우려고 갔던 그가 중병에 걸렸다는 소식이 빌립보에 전해졌습니다. 문제는 에바브로디도 자신입니다. 그는 자신이 중병에 걸린 소식을 빌립보의 성도들이 알게 되었다는 소식으로 인해 몹시 걱정하였습니다(26절). 깊은 고뇌로 극심하게 염려했다는 뜻입니다. 에바브로디도가 몹시 걱정한 것은 자신의 질병이 아니라, 자신이 중병에 걸린 소식이 전해짐으로 빌립보 성도들의 신앙이 흔들리고, 바울이 공격을 받고 복음의 능력이 훼손되는 것이었습니다. 교회를 염려하는 그의 마음이 어떠했는지를 잘 드러냅니다. 그런데 바울은 기쁜 소식을 전해줍니다. 다행스럽게도 에바브로디도의 병이 나았습니다. 바울은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합니다(27절). 바울로서는 자신을 도우려고 왔던 에바브로디도가 병들어 죽는다면 이루 말할 수 없는 슬픔과 절망스러운 상황이 되었을 것입니다. 빌립보의 성도들이 많이 실족하였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자비하심으로 고쳐주셨으니, 이것은 에바브로디도를 위한 근심은 물론 빌립보 교회를 위한 근심이 겹치지 않도록 자신을 불쌍히 여겨주신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합니다.

목숨을 아끼지 않은 사람

이런 상황에서 바울은 에바브로디도를 빌립보로 속히 돌려보내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25절). “필요하다”라는 말은 즉시 실행해야만 하는 절대적인 일을 의미합니다. 바울은 그렇게 하면 빌립보의 성도들이 그를 다시 보며 기뻐할 것이고, 자신의 마음도 한결 가벼워지리라 생각했습니다. 바울은 에바브로디도를 가리켜 “자기 목숨을 아끼지 않은 사람”이라고 부릅니다. 에바브로디도는 교회가 그에게 맡긴 사명 곧 바울을 돌보고 돕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쳐 섬겼습니다. 사람에게 목숨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습니다. 그러니 목숨을 아끼지 않았다는 것은 모든 것을 내어주었다는 뜻입니다. 목숨을 아끼지 않는 것, 하나님과 교회와 사명을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는다는 것은 성도의 온전한 헌신과 사랑의 거룩한 삶을 가장 잘 보여주는 표현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입은 자들이 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헌신의 모습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사랑하신 방식이기도 합니다. “당신의 아들을 아끼지 않으시고, 우리 모두를 위하여 내주신 분이,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선물로 거저 주지 않으시겠습니까?”(롬 8:32)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자기의 목숨을 버리셨습니다. 그러므로 목숨을 아끼지 않는 헌신은 하나님을 닮은 가장 숭고한 성도와 교회의 모습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 자신에 물어보십시오. 나는 목숨을 아끼지 않고 하는 일이 있는가? 나는 무엇을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는가? 나는 주님을 위해, 교회를 위해, 사랑과 섬김을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고 있는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아끼지 않고 내어주신 주님은,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께 순종하는 일에 목숨을 아끼지 않을 성도를 찾으십니다. 바울은 목숨도 아끼지 않은 에바브로디도에 대해 좀 더 깊고 자세하게 말씀하면서 그를 다섯 가지의 모습으로 묘사합니다. 우리는 여기서 에바브로디도의 진면모를 깊이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형제

바울은 에바브로디도를 가리켜 자신의 형제라고 부릅니다. 형제는 인간 관계 중에서 부모와 자식의 관계와 함께 가장 친밀한 관계입니다. 형제란 한 핏줄을 받은 관계를 말합니다. 피보다 더 진한 관계가 바울과 에바브로디도의 관계였습니다. 이 두 사람이 형제가 된 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맺은 관계였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예수님의 보혈의 피로 서로 형제가 되었습니다. 한 분 주님을 섬기고, 한 분 하나님을 고백하며, 한 분 성령님의 능력으로 한 세례를 받아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를 나누며 그리스도 보혈의 피를 나눈 형제자매는 세상에서 그 어떤 관계보다도 거룩하고 친밀하고 아름다운 관계입니다. 우리는 이처럼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자매인 관계를 추구해야 합니다. 우리는 한 교회 안에서 믿음의 식구인 우리들의 관계는 이렇게 친밀하고 신실한 관계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됩니다. 성도에게는 서로를 향해 열린 마음과 신실한 마음으로 형제자매의 친밀한 관계를 이루어가야 할 의무와 책임이 있습니다. 이러한 관계를 맺기 위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주님으로 고백하고, 그분의 구속의 사랑의 십자가의 은혜를 함께 누려야 합니다. 특별히 소그룹에 참여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속회에 참여하고, 성경공부에 참여하고, 사역팀에 참여하고, 선교회에 참여하십시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서로 형제자매라는 믿음을 가지기 바랍니다. 뜨겁게 서로 사랑하는 형제자매의 복되고 아름다운 믿음과 사랑의 관계로 행복한 우리 교회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동역자

바울은 에바브로디도를 동역자라고 부릅니다. “동역자”란 “함께 수고하는 사람”입니다. 동역하는 성도는 복음을 위해 함께 땀을 흘립니다. 에바브로디도가 로마의 감옥에 갇혀 있는 바울을 찾아갔을 때 그것은 자신의 목숨을 내거는 결단이었습니다. 빌립보에서 로마까지는 1,800km입니다. 온종일 꼬박 걸어도 두 달이 걸리는 거리입니다. 그것이 다가 아닙니다. 감옥에 갇힌 사람을 찾는 것은 갇힌 사람과 관련된 일로 의심을 받을 수도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에바브로디도는 바울을 찾아감으로 바울이 겪는 모든 고난과 어려움을 함께 지었습니다. 믿음의 사람은 언제나 동역합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사역은 동역이 아니면 이룰 수 없는 일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자매라면 우리는 기꺼이 주님의 일에 한마음이 될 수 있습니다. 함께 수고하기를 기뻐하며, 서로 격려하며 동역하면서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합니다. 지금 자신이 참여하고 힘쓰는 사역은 무엇입니까? 자신이 동역자가 되어서 함께 해주고 싶은 일은 어떤 것이 있습니까? 우리 교회는 함께 수고하는 동역의 손길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예배, 찬양, 교육과 훈련, 전도, 돌봄, 섬김, 봉사와 구제, 해외 선교, 가정 사역 등 우리가 동역해야 할 들이 가득합니다. 우리가 서로 동역자가 되어준다면 우리는 건강하고 행복한 생명과 사랑의 공동체, 소망의 복된 교회로 뻗어갈 것입니다.

전우

이제 바울은 에바브로디도를 자신의 전우라고 소개합니다. “전우”는 전장(戰場)에서 승리하기 위해 전투를 함께하는 군인 동료입니다. 그러니 바울과 에바브로디도는 주님의 복음을 함께 싸우는 전우가 된 것입니다. 복음의 전우들에게 사령관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 교회의 사령관은 누구이겠습니까? 당연히 예수님이십니다. 우리의 복음의 전투에는 공동의 목표와 공동의 적이 있습니다. 우리의 목표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복음의 승리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알고, 주님을 전하고, 주님을 높이는 것이 우리의 목적입니다. 우리의 적은 모든 악의 세력입니다. 죄의 세력이 우리의 적입니다. 훈련소에 들어가면 훈련을 받을 때 ‘훈련의 땀 한 방울은 전쟁의 피 한 방울과 같다’는 말을 듣습니다. 진정한 군인은 항상 훈련합니다. 준비합니다. 경계를 놓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 열심히 훈련받읍시다. 기쁨으로 예배하고, 기도하며, 말씀을 묵상하고 공부하며 사랑의 삶을 실천하는 것이 우리의 훈련입니다. 승리하는 복음의 전우가 됩시다. 우리 모두 복음의 능력과 성령님의 역사로 강한 십자가의 군사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사신이며 일꾼

바울은 에바브도디도를 가리켜 사신이요 일꾼이라고 했습니다. 사신이란 임금이나 국가의 명령을 받고 외국에 사절로 가는 사람을 말하는데, 여기서는 교회를 통하여 하나님이 보내신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사도라는 말과도 같은 의미입니다. 주님의 보냄을 받은 사람은 누구나 사신이며 사도입니다. 에바브로디도는 하나님의 일을 위해 빌립보 교회의 보냄을 받아 바울을 찾아왔고, 바울을 도왔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보내심에 순종함으로 에바브로디도는 교회의 선한 일꾼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교회를 이루고 하나님이 맡기신 사명을 위해 일꾼이 되어야 합니다. 선한 일꾼, 믿음의 일꾼, 진심의 일꾼이 되어야 합니다. 

이 세상에는 다양한 꾼들이 있습니다. 제일 많은 것이 구경꾼입니다. 구경꾼은 남이 하는 것을 보기만 할 뿐입니다. 자기의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자기 몸을 움직이려 하지 않습니다. 받으려고만 합니다. 헌신하지 않습니다. 구경꾼이 많으면 아무 일도 이룰 수 없습니다. 말꾼도 있습니다. 말꾼은 말은 잘하는데 열매가 없습니다. 손과 발을 사용하지 않고 입술로만 일하는 사람입니다. 판단하고 정죄를 하면서도 정작 참여하지는 않습니다. 어떤 모임이든 말꾼이 많아지면 시끄러워집니다. 그러다 보면 싸움꾼이 생깁니다. 싸움꾼은 언제나 자기만 옳습니다. 남은 다 틀려 보입니다. 싸움꾼이 있으면 어지러워지고 분란으로 인해 아무 일도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우리는 어떤 성도입니까? 모두 선한 일꾼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은 일꾼을 통하여 일하십니다. 일꾼은 돕는 사람입니다. 돕는 사람과 일꾼이 많은 곳에는 항상 사역의 기쁨이 넘치고 열매가 풍성합니다. 우리는 모두 일꾼으로 부름을 받았음을 기억하십시오. 많은 사람이 바울이 되려고 하지, 에바브로디도가 되려고 하지 않습니다. 여호수아가 되려고 하지 갈렙이 되려고 하지 않습니다. 메시야가 되려고 하지 세례 요한이 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무대 뒤에 있기를 즐거워하며, 무대 뒤에서 드러나지 않고 사랑과 섬김의 삶을 사는 성도가 많을수록 참되고 거룩한 교회입니다. 물론 누군가는 모세 역할도 해야 하고, 바울 역할도 해야 하고, 베드로도 되어야 하고, 다윗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일꾼은 결코 세상의 눈으로 크고 작은 것을 판단할 수 없습니다. 높고 낮음을 판단할 수 없습니다. 일꾼은 오직 돕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만 드러나면 됩니다. 우리 교회에는 이런 일꾼들이 많이 있지만, 더 세워져야 합니다. 우리의 삶은 성공이 목적이 아니라 섬김이 목적입니다. 승리가 목적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에바브로디도와 같은 귀하고 아름다운 믿음의 사람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우리 서로 진정한 형제자매가 됩시다. 진정한 동역자가 됩시다. 전우가 됩시다. 참된 일꾼이 됩시다. 목숨을 아끼지 않을 헌신 되고 아름다운 삶을 사는 주님의 사람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4. 다듬으심

1) 주일 예배를 통해 경험하고 감동받거나 느낀 것은 무엇인가요?

2) 바울은 에바브로디도를 가리켜 ‘자기 목숨을 아끼지 않은 사람’이라고 소개합니다. 목숨을 아끼지 않았다는 것은 모든 것을 내어주었다는 뜻입니다. 나는 무엇을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습니까? 자신에게 물어보고 서로 함께 나눠봅시다.

3) 세상에는 구경꾼, 말꾼, 싸움꾼 다양한 꾼이 있습니다. 우리는 선한 일꾼으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선한 일꾼으로 내가 해야 할 섬김과 함께 동역해야 할 사역은 무엇입니까?

4) 앞으로 한 주간 삶 속에서 말씀을 어떻게 적용할지 구체적으로 한 가지만 나눕니다.

5. 들어쓰심 

1)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기 위한 결단과 헌신의 기도하기

2) VIP(전도대상자), 개인, 가정, 교회, 선교, 나라를 위한 합심, 중보기도

6. ◾ 가 정 : 말씀나눔

 ◾ 소그룹 : 말씀나눔/ 소식나눔/ 헌금찬송 309장/ 주기도문

7. 금주의 암송구절 : 금주의 암송구절을 함께 외웁니다.

 ◾ 그러므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사람들은 정죄를 받지 않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성령의 법이 당신을 죄와 죽음의 법에서 해방하여 주었기 때문입니다.(롬 8: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