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915 동수교회 주일 예배 실황 영상 "성도는 인품으로 말한다"

작성 동수교회
날짜 2024-09-15
설교한 날
2024/09/15 일
성경 본문
빌립보서 2:19-24
설교
주학선 목사

성도는 인품으로 말한다(빌립보서 2:19-24)

1. 환영과 찬양

◾ 기쁨으로 서로 환영하며 축복합니다. 잠시 교제의 시간을 가집니다. 

◾ 찬송 570장 ◾ 복음송 이런 교회되게 하소서

◾ 기도 맡은이 혹은 합심기도

2. 먼저오심 

1) 지난 한 주간의 이야기(행복, 고마움, 힘듦)를 서로 나눕니다.

2) 지난 한 주간 어떤 기도를 했는지 서로 이야기합니다.

3. 만나주심

◾ 성경본문 : 빌립보서 2:19-24

로마의 감옥에 갇힌 바울은 디모데를 빌립보 성도들에게 보내고 싶어합니다. “나는 주 예수 안에서 디모데를 여러분에게 곧 보내고 싶습니다.”(19절)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표현은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어 그분의 죽음과 부활에 동참하고 구원의 은혜를 입은 것을 의미합니다. 반면에 오늘 본문에서처럼 “주 안에서”라는 표현은 예수님의 다스리심과 통치하심의 주권 아래에 있음을 의미합니다. “주 안에서” 그리스도인은 주님의 통치와 권세의 능력으로 살아갑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주님의 능력을 힘입어 디모데를 속히 보낼 수 있기를 바라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이 신앙의 아들인 디모데를 빌립보의 성도들에게 속히 보내기를 바랐던 이유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나도 여러분의 형편을 앎으로써 격려를 받으려는 것입니다.”(19절) 디모데는 바울에게도 위로가 되고, 빌립보 성도들에게도 위로가 되어줄 적임자였습니다. 바울은 누구보다도 디모데가 적임자인 이유가 있습니다.

진심

“나에게는, 디모데와 같은 마음으로 진심으로 여러분의 형편을 염려하여 줄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20절) 디모데는 진심의 사람이었습니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염려하는 것은 곧 긍휼의 마음입니다. 긍휼의 마음은 다른 사람의 형편과 처지를 마치 자신이 똑같이 겪는 것처럼 그렇게 헤아리는 것입니다. 깊은 긍휼의 마음에서 나오는 진심의 삶에는 거짓이 없습니다. 오직 마음으로부터 우러러 나오는 염려와 사랑만 있습니다. 디모데야말로 빌립보 성도들을 진심으로 염려하여 주고 돌봐줄 사람이었습니다. 진실한 마음의 사람은 의도가 선합니다. 그는 진심으로 친구가 되어줍니다. 진심의 사람은 자기를 자랑하거나 자기의 이익을 추구하지 않습니다. 어떤 숨은 의도도 전혀 없습니다. 진실한 사람의 말은 언제나 정직합니다. 진심의 사람의 태도는 항상 밝고 긍정적입니다. 기쁠 때 함께 기뻐하고, 슬플 때 함께 슬퍼합니다. 

진심은 겉과 속이 같은 마음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의 말과 행동과 마음이 일치한다면 그 사람은 진실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성도로 살아야 할 삶은 바리새인처럼 단지 겉으로 거룩해 보이고 의로워 보이는 삶이 아닙니다. 성도는 겉과 속이 같은 삶을 살기에 힘써야 합니다. 우리는 겉모양을 얼마든지 꾸밀 수 있지만, 진실한 속마음은 꾸밀 수 없습니다. 우리는 외면을 꾸미기 전에 내면이 변화되어야 합니다. 디모데가 진실한 마음의 사람이었듯이 우리도 진실한 마음의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디모데 안에 살아 계셔서 역사하셨던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살아계시면 가능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빌 2:5)을 품으면 됩니다. 디모데를 만든 주님은 얼마든지 우리를 새롭게 만드실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익

이어서 바울은 말씀합니다. “모두 다 자기의 일에만 관심이 있고, 그리스도 예수의 일에는 관심이 없습니다.”(21절) 바울이 볼 때 빌립보 교회와 자신을 위해 일해줄 사람은 디모데밖에 없었습니다. 여기서 “일”은 ‘이익’이라는 의미의 단어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이 자기 이익에만 몰두하고 그리스도의 이익은 구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모든 사람은 그리스도인들을 가리킵니다. 바울은 자기 주변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보면서 그리스도의 이익을 추구하는 데에는 관심이 없는 것이 안타까웠습니다. 바울이 믿고 사역을 맡길 사람이 없었던 것입니다. 바울과 교회를 위해서 무슨 일이든 함께하며 감당할 동역자가 부족했던 바울의 어려운 상황을 보여줍니다. 여기서 그리스도의 이익은 그리스도의 몸인 빌립보 교회의 유익함과 평안을 뜻합니다. 교회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그리스도 예수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며, 그리스도의 이익을 구하는 성도는 교회의 이익을 구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디모데야말로 교회의 이익을 위해 일할 사람임을 보여줍니다.

지금도 주님은 이런 성도를 찾으십니다. 그리스도 예수를 위해 일할 사람, 교회의 유익함을 위해 헌신할 사람, 다른 사람의 일을 내 일로 여기며 섬길 사람을 찾으십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사역은 자기의 이익 때문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이익 곧 그리스도의 이익을 위해 하는 것임을 잊지 마십시오. 이것이 바울의 고백처럼 “살든지 죽든지 그리스도께서 존귀함을 받으시는”(빌 1:20) 삶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섬기고 봉사하고 선교함으로 그리스도의 일을 합니다. 사람을 섬기는 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고,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디모데와 같이 주님이 인정하시고 주님이 뜻대로 사용하실 성도, 예수님이 목적이 되어 오직 그리스도의 이익을 위해 기꺼이 헌신하는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인품

바울은 계속 말씀합니다. “디모데의 인품은 여러분이 잘 알고 있습니다. 그는 자식이 아버지에게 하듯이 복음을 위하여 나와 함께 봉사하였습니다.”(22절) 흔히 ‘연단’으로 번역된 그리스어 ‘도키메이’는 ‘동전의 함량을 재어 판정한다’라는 뜻으로 시련을 통하여 인품, 인격, 성품이 형성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같은 단어가 로마서에서는 ‘인격’으로 번역되었습니다(롬 5:3-5). 결국 바울은 디모데의 인품이 검증된 것임을 말하면서, 빌립보의 성도들도 디모데의 인품을 잘 알고 있다고 말합니다. 이런 표현을 통해 바울은 디모데와 같은 훌륭하고 모범적인 지도자를 본받아야 함을 말합니다. 그리고 검증되지 않은 수준 미달의 사람들이 있으니 그들을 경계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디모데의 인품은 인내와 환란을 통해 단련된 인품이었습니다. 구체적인 삶에서 행동과 모습으로 드러나고 증명된 인격이었습니다. 우리는 인품으로 말해야 합니다. 성품으로 전도해야 합니다. 인격으로 감동을 주어야 합니다. 우리는 인격으로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인격으로 전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거룩하고 검증된 인품을 형성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인품은 우리의 삶의 모든 분야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언어, 사고, 습관, 시간 사용, 인간관계, 가정생활, 대화, 도덕성, 윤리 등 모든 것이 우리의 인품에 의해 좌우됩니다. 인품이 형성되면 모든 것이 바르게 됩니다. 인격은 하루아침에 세울 수 없습니다. 그래서 환란이 인내를 낳고 인내가 마침내 단련된 인격을 낳는 것입니다. 우리 삶에 일어나는 모든 일이 인격 형성의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어 거룩하고 아름다운 인격을 형성하는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우리가 소망하는 성장이고 성숙입니다. 

섬김

바울은 디모데를 가리켜 “그는 자식이 아버지에게 하듯 복음을 위하여 나와 함께 봉사하였습니다”

(22절)라고 말씀합니다. 디모데는 자녀가 아버지에게 하듯이 복음을 전하는 일에 바울과 함께 봉사하였습니다. “봉사하였다”는 종이나 노예가 되어 섬겼다는 뜻입니다. 이런 섬김은 예수님이 보여주신 본보기입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 20:26-28) 디모데는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어 그리스도를 닮은 지도자임을 표현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섬김의 본을 보여주시려고 손에 대야와 수건을 드셨습니다. 수건은 멋이 아닙니다. 수건은 힘도 아닙니다. 수건을 사용하려면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그것이 주님의 모습이며, 디모데가 보여준 사역의 태도였습니다. 예수님께는 섬기는 사람이 큰 사람입니다. 크고자 하는 것은 좋은 것입니다. 그런데 크게 되기 위한 예수님의 방법은 종이 되어 섬기는 것입니다. 낮아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낮아지면 그곳에서 예수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섬김이 복종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성도는 다른 사람을 섬기기 위해 스스로 종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위한 섬김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와 사랑으로 진정한 자유인이 되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섬김입니다. 성도는 섬김의 삶에서 진정한 자유를 누립니다. 진정한 기쁨을 맛봅니다. 섬길수록 큰 사람이 됩니다. 우리는 손에 수건을 들고 “주님, 준비되었습니다. 말씀만 하십시오.”라고 말하며 기쁨으로 섬기는 주님의 참 제자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경계선

“그러므로 내 일이 되어 가는 것을 보고, 그를 곧 보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나도 곧 가게 되리라는 것을 주님 안에서 확신합니다.”(23-24절) 바울은 두 가지의 마음을 드러냅니다. 하나는 디모데를 보낼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바울 자신이 곧 가게 될 것이라고 확신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바울의 상황을 잘 알고 있습니다. 로마의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 석방될지, 계속 구금될지, 사형에 처할지 알 수 없는 절박한 상황입니다. 이런 사실을 염두에 두면서 오늘 본문을 볼 때 바울이 디모데를 보내는 것과 바울이 석방되어 빌립보 성도들을 만나는 것 중에 어느 것이 더 확실합니까? 디모데를 보내는 것입니다. 바울이 석방되는 것은 바라는 희망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반대로 고백하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본다면 바울은 로마에서 순교하였기에 바울의 확신은 틀렸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깊은 확신과 소원을 붙잡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잘못 말한 것일까요? 바울은 헛된 확신을 했던 것일까요?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는 여기서 바울의 깊은 고뇌, 인간적인 사모함, 믿음의 열망, 내적인 씨름을 볼 수 있습니다. 바울은 주님께로 가고 싶은 강한 열망과 빌립보 성도들에 대한 사랑과 무거운 책임감을 동시에 경험하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바람과 열망과 고뇌와 아픔을 숨기지 않은 채 담담하게 경계선에 서 있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것이 신실한 믿음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항상 경계선에 서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은 경계선에 선 삶입니다. 주님의 구원과 다시 오심의 경계선, 소망과 절망의 경계선, 기쁨과 아픔, 평안과 두려움, 치유와 상처, 용서와 배반, 사랑과 미움, 빛과 어둠의 경계선에 서 있습니다. 믿음의 삶이란 바울과 같이 경계선 위에서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고 주님의 다스리심을 따라 구원의 완성, 소망, 기쁨, 평안, 치유, 용서, 사랑을 확신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경계선에 선 우리는 확신하는 믿음으로 예배하고 기도하며 사역합니다.

우리 교회에 많은 디모데들이 일어나기를 축복합니다. 진심의 성도, 예수의 이익을 구하는 성도, 그리스도의 인품을 갖춘 성도, 섬김의 주인인 성도로 검증된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 성장하기를 축복합니다. 우리가 가는 생명의 길 멈추지 맙시다. 포기하지 맙시다.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룰 것입니다. 아멘.

4. 다듬으심

1) 주일 예배를 통해 경험하고 감동받거나 느낀 것은 무엇인가요?

2) 진심은 겉과 속이 같은 마음입니다.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사람을 진실한 사람이며, 진심의 사람은 자기를 자랑하거나 자기의 이익을 추구하지 않습니다. 성도는 겉과 속이 같은 삶을 살기에 힘써야 합니다. 나는 진실한 사람으로 살고 있는지 자유롭게 나눠봅시다.

3) 디모데의 인품은 인내와 환란을 통해 단련된 인품이었습니다. 그는 삶에서 행동과 모습으로 드러나고 증명된 인격이었습니다. 성품으로 전도하기 위한 나의 노력은 무엇입니까?

4) 앞으로 한 주간 삶 속에서 말씀을 어떻게 적용할지 구체적으로 한 가지만 나눕니다.

5. 들어쓰심 

1)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기 위한 결단과 헌신의 기도하기

2) VIP(전도대상자), 개인, 가정, 교회, 선교, 나라를 위한 합심, 중보기도

6. ◾ 가 정 : 말씀나눔

 ◾ 소그룹 : 말씀나눔/ 소식나눔/ 헌금찬송 원하고 바라고 기도합니다/ 주기도문

7. 금주의 암송구절 : 금주의 암송구절을 함께 외웁니다.

 ◾ 그뿐 아니라 우리는 환란 가운데서도 기뻐합니다. 환란은 인내를 낳고, 인내는 단련된 인격을 낳고, 단련된 인격은 희망을 낳는 줄을 우리는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롬 5: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