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환영과 찬양
◾ 기쁨으로 서로 환영하며 축복합니다. 잠시 교제의 시간을 가집니다.
◾ 찬송 39장 ◾ 복음송 약할 때 강함 되시네◾ 기도 맡은이 혹은 합심기도
2. 먼저오심
1) 지난 한 주간의 이야기(행복, 고마움, 힘듦)를 서로 나눕니다.
2) 지난 한 주간 어떤 기도를 했는지 서로 이야기합니다.
3. 만나주심
◾ 성경본문 : 빌립보서 1:12-18
우리는 지금 바울이 어떤 상황에 있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로마 시민권자인 바울은 복음을 전하다가 황제의 법정에 호소하여 로마의 한 집에 감금되어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바울이 이런 상황에 어떻게 반응하며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우리는 바울이 두려워하거나 불평하거나 원망하거나 후회하는 모습을 단 한 구절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오히려 바울은 감사하며 기뻐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매우 특별한 단어가 보입니다. 그것은 “도리어”라는 단어입니다(12절). 바울은 이 단어를 통해 역경을 마주하는 그의 마음과 태도를 잘 보여줍니다. ‘도리어’는 ‘예상이나 기대 또는 일반적인 생각과는 다르게’라는 뜻입니다. 사도 바울은 일반적인 생각이나 예상 혹은 인간적인 의도와는 전혀 다르게 일하시는 ‘도리어’의 하나님을 경험하였으며, 그는 ‘도리어’ 신앙으로 목회하고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거침돌을 디딤돌로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성도는 믿음의 순례길을 걸으며 많은 시험과 역경을 만납니다. 시험과 고난과 시련은 성도의 삶의 중요한 영역입니다. 사도 바울은 “환란을 자랑합니다”(롬 5:3)라고 말하기도 하였습니다. 우리는 주님을 따르며 믿음의 길을 걸을 때 시련을 예상해야 합니다. 그리고 환란을 대비를 해야 합니다. 성도가 고난을 대하는 태도의 핵심이 바로 ‘도리어’ 신앙입니다. ‘도리어’ 신앙은 고난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으며, 하나님은 어떤 역경과 문제라도 선한 것으로 바꾸실 수 있음을 확신하는 것입니다(롬 8:28).
바울은 ‘도리어’ 신앙으로 고난의 거침돌을 소망의 디딤돌로 삼았습니다. 고난의 거친 돌이 떨어질 때마다 그것을 믿음의 든든한 디딤돌로 받아들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모든 일이 ‘긍정의 도리어’가 됩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 20:28) 예수님은 ‘도리어’의 주님이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도리어’ 신앙으로 로마 감옥의 거침돌을 복음 전도의 디딤돌로 삼았습니다. 로마의 감옥에 갇혀 있거나 집에 감금되어 있는 바울을 상상해보십시오. 당시의 로마법으로는 재판을 받는 죄수는 항상 로마 군인 한 사람과 함께 쇠고랑을 차고 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자신을 묵고 있는 쇠고랑을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6시간마다 교대로 들어와서 자기와 함께 쇠고랑을 차고 있는 로마 군인의 감시를 받으며 살아야 했지만, 바울은 자신이 로마 군인에게 묶여 있는 것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바울은 자신을 감시하는 로마 군인이 자기에게 묶여 있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이것이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도리어’의 믿음입니다. 바울은 자기를 감시하는 군인이 바뀔 때마다 자신이 왜 이런 상황이 되었는지, 복음이 무엇인지,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인지 전할 기회로 삼았습니다. 바울은 자신을 매고 있는 쇠고랑을 고난이 아닌 복음 전도의 기회로 보았습니다. 쇠고랑이 소망이 되고 사명이 되었습니다. 그러기에 바울은 자신이 감옥에 갇힌 것이 예수 그리스도 때문임이 알려졌으며, 이것이 복음을 전하는 놀라운 기회가 되었다고 고백하였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본받아야 할 믿음의 모습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따르며 믿음의 길을 걸을 때 시험과 역경을 만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도리어’의 믿음으로 역경 속에서 오히려 은혜의 기회를 찾으십시오. 거침돌을 불평하기보다 은혜의 디딤돌로 삼으십시오. 하나님은 어떤 상황에서도 역사하시며 일하시는 은혜와 능력의 주님이십니다. 우리에게 시련과 고난이 올 때도 역경을 기회로 보고 바꿀 수 있는 성도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역경을 역전의 승리로
바울의 ‘도리어’ 신앙은 역경을 역전의 승리로 이끄는 신앙이었습니다. 사도행전 16장에는 사도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감옥에 갇힌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빛도 들어오지 않는 깊은 감방에 갇혔고, 그들의 발에는 차꼬가 차여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 감옥 속에서 부흥회를 열었습니다. 힘차게 기도를 했습니다. 뜨겁게 찬송하였습니다. 그때 감옥의 터가 흔들리며, 감옥의 문들이 다 열렸습니다. 간수는 바울과 실라 앞에 엎드리고 묻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겠습니까?” 바울과 실라가 선포합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행 16:31) 그 밤에 간수의 온 식구들이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는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바울과 실라는 감옥에 갇혔으나 도리어 그것이 복음 전파의 기회가 되었고 놀라운 구원의 열매를 맺게 되었습니다.
빌립보에서 경험한 역사가 지금 로마에서도 똑같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바울의 ‘도리어’ 신앙은 실패로 보이는 자리에서도 절망의 환경에서 굴복하지 않고 오히려 승리의 깃발을 휘날리는 역전극을 만들어냈습니다. 바울의 이런 모습은 로마의 다른 성도들에게 놀라운 용기와 힘을 주었습니다(14절). 도리어 바울의 투옥이 성도들에게 두려움을 극복하고 복음을 담대히 전하는 계기가 되게 하였던 것입니다.
베드로전서에 말씀합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고난을 당하면 부끄러워하지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십시오.”(벧전 4:16) 고난이 도리어 하나님의 영광이 되게 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많은 성도가 바울의 모습을 통하여 복음을 부끄러워하기는 커녕 도리어 담대하게 전파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이처럼 고난이 도리어 하나님의 영광이 되고, 실패가 도리어 승리의 깃발이 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능력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의 죽음의 십자를 ‘도리어’ 부활의 능력과 승리의 영광이 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부활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우리에게는 오직 부활의 주님이 능력이며, 소망이며, 승리의 기쁨이 되십니다. 그러므로 역경 중에도 기뻐하십시오. 아픔 중에도 기뻐하십시오. 우리의 약함이 오히려 주님의 강함이며, 우리의 역경이 도리어 승리가 되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고백합니다. “나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병약함과 모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란을 겪는 것을 기뻐합니다. 내가 약할 그 때에, 오히려(도리어) 내가 강하기 때문입니다.”(고후 12:10) 그리스도 안에서는 약함이 도리어 강함입니다. 고난이 오히려 기쁨입니다. 위기가 오히려 기회입니다. 우리에게 역경은 그리스도의 능력을 경험하는 기회가 됩니다. 우리에게 절망의 상황은 그리스도의 소망을 바라보는 기회가 됩니다. 주님은 우리의 어떤 고난과 상황이라도 복음의 진전을 위해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여 역경이 도리어 복음의 기쁨이 되고, 갇힘이 도리어 전도의 자유가 되고, 실패가 도리어 전도의 승리가 되며, 약함이 도리어 강함이 되는 은혜의 삶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어떤 상황에도 흔들리지 않는 초점
사실 바울에게는 외적인 박해만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그에게는 내적인 어려움과 아픔도 있었습니다. 15절 이하는 그 상황을 잘 보여줍니다. 앞에서는 바울의 갇힘을 부끄러워하기 보다는 오히려 복음을 담대하게 전하는 자들을 언급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바울이 감옥에 갇혀 있는 상황을 틈타서 그를 시기하고 경쟁 심리와 불순한 마음으로 사역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음을 말합니다. 시기와 다툼으로 그리스도를 전하는 사람들이 누구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감옥에 갇힌 바울을 정치적으로 더욱 힘들게 만들려는 불순한 마음으로 행동하는 그리스도인들로 추측할 수 있습니다. 이들은 바울과 인간적인 관계로 틀어져서 바울을 모함하고 시기하고 공격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분노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말합니다. “그렇지만 어떻습니까? 거짓된 마음으로 하든지 참된 마음으로 하든지, 어떤 식으로 하든지 결국 그리스도가 전해지는 것입니다. 나는 그것을 기뻐합니다. 앞으로도 또한 기뻐할 것입니다.”(18절) 바울은 비방과 모함을 받으면서도 오히려 기뻐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사명과 목적을 놓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그리스도가 전해진다면 그것으로 인해 기뻐할 수 있었습니다. 복음 전도가 자신의 목적이고 사명이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선한 결과만 있다면 거짓된 동기와 불순한 마음으로 사역을 해도 된다는 것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바울이 이런 어려움과 마음의 상처에도 불구하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 집중하였다는 것입니다. 바울의 존재 목적과 초점은 오직 복음을 위한 것이기에, 복음이 전파되고 그리스도가 전해지는 한 그는 얼마든지 역경과 모함을 이겨낼 용기와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는 관계의 상처와 아픔이 도리어 복음 전도의 기회가 되었다면, 어떤 상황에서도 기뻐할 수 있었습니다. 바울은 편지의 뒤에서 이렇게 고백하였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서 위로부터 부르신 그 부르심의 상을 받으려고 목표점을 바라보고 달려가고 있습니다.”(빌 3:14) 바울은 목표점이 분명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 중심의 초점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존재 목적은 무엇입니까? 우리의 사명은 무엇입니까?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기대하십니까? 우리는 자신이 숨을 쉬며 살아가며 행하는 모든 일이 주님을 위한 것이며, 자신의 인생은 주님 안에 있다는 확신이 있습니까? 우리에게는 상황과 문제와 위기 속에서 그것을 이해하고 믿음으로 반응할 수 있는 믿음의 관점이 필요합니다. ‘도리어’가 그 관점입니다. 우리 모두 ‘도리어’의 신앙으로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의 부르심의 그 푯대를 향해 전진하는 승리의 성도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4. 다듬으심
1) 주일 예배를 통해 경험하고 감동받거나 느낀 것은 무엇인가요?
2) 우리는 믿음의 순례의 길을 걸으며 많은 시험과 역경, 고난을 만납니다. 성도가 고난을 대하는 태도는 ‘도리어’ 신앙입니다. ‘도리어’ 믿음의 눈으로 바라볼 삶의 문제는 무엇인지 자유롭게 나눠봅시다.
3) 바울에게는 외적 박해 뿐만이나라 내적인 어려움과 아픔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 집중하였습니다. 바울의 목적과 초점은 오직 복음을 위한 것이였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의 존재 목적은 무엇입니까? 우리의 사명과 초점은 무엇인지 생각해 봅시다.
4) 앞으로 한 주간 삶 속에서 말씀을 어떻게 적용할지 구체적으로 한 가지만 나눕니다.
5. 들어쓰심
1)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기 위한 결단과 헌신의 기도하기
2) VIP(전도대상자), 개인, 가정, 교회, 선교, 나라를 위한 합심, 중보기도
6. ◾ 가 정 : 말씀나눔 ◾ 소그룹 : 말씀나눔/ 소식나눔/ 헌금찬송 288장/ 주기도문
7. 금주의 암송구절 : 금주의 암송구절을 함께 외웁니다.
◾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요 13:34-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