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827 동수교회 2부 예배 실황 영상 "서로 너그럽게 대하십시오"

작성 동수교회
날짜 2023-08-27
설교한 날
2023/08/27 일
성경 본문
마태복음 11:28-30, 에베소서 4:1-3
설교
주학선 목사

<온라인 주보>

온라인 주보를 보기 원하시는 분은 <온라인 주보>를 클릭해주세요.

 

 

 

 

 

서로 너그럽게 대하십시오(에베소서 4:1-3)

 

 

1. 환영과 찬양
   ◾ 기쁨으로 서로 환영하며 축복합니다. 잠시 교제의 시간을 가집니다.
   ◾ 찬송 288장    ◾ 복음송  왜 슬퍼하느냐     ◾ 기도  맡은이 혹은 합심기도

 

2. 먼저오심
   1) 지난 한 주간의 이야기(행복, 고마움, 힘듦)를 서로 나눕니다.
   2) 지난 한 주간 어떤 기도를 했는지 서로 이야기합니다.

 

3. 만나주심
   ◾ 성경본문 : 에베소서 4:1-3

 

성경에서는 ‘너그러움’이 흔히 ‘용납’으로 번역됩니다. ‘용납’이란 “너그러운 마음으로 남의 말이나 행동을 받아들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너그러움’은 성도가 서로 사랑하며 살 때 매우 중요한 성품입니다. 너그러움은 누군가를 자신의 사랑의 삶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용납한다는 것은 상대방이 잘하고 좋기 때문만이 아니라, 부족하고 맘에 들지 않고 때로는 그릇된 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을 내가 사랑하고 책임지는 마음으로 받아주는 것입니다.

 

창세기 32장에는 매우 극적인 장면이 나옵니다. 바로 형이 받을 복을 가로챘던 야곱이 20년 만에 형과 대면하는 사건입니다. 형의 복수가 몹시 두려웠던 야곱은 형을 만나기 전에 형에게 선물을 잔뜩 전하면서 에서의 너그러움만을 기대하였습니다. 에서도 나름의 재산을 형성하면서 당당하게 살면서 동생을 기꺼이 맞아 주었습니다. 형의 너그러움 앞에 야곱은 감사의 마음을 고백하였습니다. “형님께서 저를 너그럽게 맞아 주신 것만으로도 만족합니다.”(창 33:15) 하나님은 에서의 너그러움을 통해 야곱 가족의 새로운 가나안 땅의 삶에 평탄한 길을 열어주었습니다.

 

성도는 너그러움으로 상대방을 자신의 사랑의 삶으로 받아들입니다. 바울 사도는 말씀합니다. “겸손과 온유와 인내를 다하여 사랑으로 서로 너그럽게 대하십시오.”(엡 4:2) 너그러움은 일방적인 행위로는 온전히 성취될 수 없습니다. 서로의 너그러움이 만날 때 진정한 사랑의 기쁨이 넘칩니다. 바울 사도는 너그럽게 대하라고 말씀하였을 뿐만 아니라, 자신을 너그럽게 용납해 달라고 부탁도 하였습니다. “여러분은 내가 좀 어리석은 말을 하더라도 용납해 주시기 바랍니다. 꼭 나를 용납해 주십시오.”(고후 11:1)

 

부르심에 합당한 삶

오늘 본문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불러주셨으니 그 불러주신 목적에 합당하게 살아가십시오.” 새번역에서는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아가십시오”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서로 너그럽게 용납하는 것은 주님의 부르심에 합당한 삶, 곧 우리를 부르신 목적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너그러움을 통해 성령님이 우리를 하나로 묶어주신 삶을 지킵니다. 너그러움은 성숙한 성도의 거룩한 사랑의 방식입니다. 너그러움이 이렇게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주님께서 우리를 너그럽게 대해주셨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에 못 미치는 처지에 놓여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얻는 구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는 선고를 받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예수를 속죄 제물로 내주셨습니다. 그것은 그의 피를 믿을 때에 유효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신 것은, 사람들이 이제까지 지은 죄를 너그럽게 보아주심으로써 자기의 의를 나타내시려는 것이었습니다.”(롬 3:23-25) 하나님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의 죽음을 믿음으로 받을 때 우리의 죄를 너그럽게 보아주셨습니다. 우리의 죄를 씻어 주시고 사해주셨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구속의 은혜를 입어 영원한 생명을 얻은 천국의 백성이 된 것은 하나님의 너그러우신 사랑 때문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서로 너그럽게 대하는 것은 부르심에 합당한 사랑의 삶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똑같은 원리를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십자가의 사랑으로 우리를 너그럽게 받아주신 것과 같이 우리도 서로 너그럽게 대하라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너그러움은 하나님을 닮아가는 성화의 삶 곧, 불러주신 목적에 합당한 삶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부르심에 합당한 너그러운 삶을 살 수 있을까요?

 

겸손함으로

너그러워지려면 먼저 겸손해야 합니다. 겸손함은 자기를 낮추는 것입니다. 마음이 낮아질 때, 우리는 너그러울 수 있습니다. 너그럽다는 단어에는 ‘경청한다’는 뜻이 있습니다. 상대방을 마음을 들어주지 않으면서 너그러울 수 없습니다. 그러나 마음이 교만한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의 처지를 이해하려 하지 않습니다. 공감하고 받아줄 여지가 없습니다. 교만과 너그러움은 친구가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눈이 높고 마음이 교만한 자를”(시 101:5) 너그럽게 대하지 않으십니다. 

 

우리는 너그러워지기 위해 세상의 방식에 흔들리지 말고 자신을 낮추는 겸손의 길을 걸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라.”(마 11:29)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을 닮아 겸손해지면 마음이 쉼을 얻습니다. 마음의 쉼으로 안정과 평화를 얻으면 너그러워집니다. 겸손한 사람은 다른 사람을 함부로 대하지 않습니다. 자기 생각으로 판단하거나 평가하지 않습니다. 겸손한 사람의 중요한 특징의 하나는 언제나 배우려고 하는 것입니다. 반면에 교만한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서 배우려 하지 않고, 가르치려고만 합니다. 교만한 사람이 누군가를 너그럽게 대한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겸손한 마음을 가질 때, 사심 없이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다른 사람의 부족한 모습을 통해서도 기꺼이 배우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영어의 겸손(humility)이라는 단어는 라틴어 흙(humus)에서 왔습니다. 색깔이 진하면서 영양과 유기질이 풍부한 옥토라는 단어입니다. 우리가 겸손해진다는 것은 좋은 흙이 되는 것과 같습니다. 생명의 씨앗은 흙이 있어야만 뿌리를 내리고 자랄 수 있습니다. 서로 너그럽게 대한다는 것은 서로에게 좋은 흙이 되어주는 것과 같습니다. 흙은 무엇이라도 받아 품고 변화시켜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킵니다. 생명은 겸손에서 자랍니다. 우리는 서로 겸손하고 너그러운 성도가 되는 것은 이처럼 놀랍고 거룩한 일입니다.

 

온유함으로

바울 사도의 말씀을 다시 봅니다. “겸손과 온유와 인내를 다하여 사랑으로 서로 너그럽게 대하십시오.”(2절) 온유함은 겸손과 함께 그리스도 예수님의 성품입니다. 겸손하신 예수님은 또한 온유하셨습니다. 온유함은 모든 것을 품어내는 능력입니다. 온유한 사람은 다른 사람을 억압하거나 지배하려 하지 않습니다. 온유한 사람은 다른 사람을 강요하지도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온유함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며, 주인 되심에 대한 분명한 믿음에서 옵니다. 모든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형상이 있으며, 하나님은 모든 사람의 주인이십니다. 그러므로 온유하다는 것은 하나님의 왕 되심과 일하심에 모든 것을 맡기는 마음입니다. 온유한 사람은 다른 사람을 판단하거나 정죄하지 않습니다. 믿음을 이유로 다른 사람에게 짐을 지우지도 않습니다. 단지 부드러운 마음으로 모든 것을 품어주려고 합니다. 온유함이 사라지는 순간, 모든 관계는 돌과 같이 굳어져서 서로 부딪치고, 상처 주고, 찌르고, 판단합니다. 갈등과 아픔이 가득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되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이며, 예수님의 성품을 닮기로 결단하고 헌신한 그리스도인입니다. 우리가 온유해질수록 서로를 받아주며, 서로 너그러워질 것입니다.서로 너그러운 관계는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성장할 수 있는 거룩한 환경을 만들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어떤 성도인가요? 우리 교회는 어떤 교회인가요? 서로 너그럽게 대하는 사랑의 관계를 맺고 있나요? 우리는 넘어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실수하는 것을 염려하지 않으며, 부족함을 책망하지 않으며, 오직 주님의 은혜와 사랑 안에서 마음껏 성장해 가는 너그러움의 공동체인가요? 

 

인내함으로

우리는 인내함으로 너그러워집니다. “겸손과 온유와 인내를 다하여 사랑으로 서로 너그럽게 대하십시오.”(2절) 우리가 서로 너그럽기 위한 세 번째 제안은 인내를 다 하라는 것입니다. 너그럽다는 단어에는 원래 오래 참는다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너그러움” 자체가 상대방에 대해 존중하고 참고 기다려주는 마음과 행동이기 때문입니다. 잘 참지 못하면 너그러울 수 없습니다. 빠를수록 좋은 것으로 여기는 조급한 시대에 인내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우리가 행복한 믿음의 삶을 기대한다면 반드시 인내를 배워야만 합니다. 예수님은 “너희의 인내로 너희 영혼을 얻으리라”(눅 21:19)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신앙생활 자체가 곧 인내 생활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거룩한 뜻이 이루어지기를 신뢰하며 기다립니다. 하나님의 공의로운 다스리심과 은혜로운 인도하심을 바라고 기다립니다. 승리의 영광으로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며 인내합니다. 영적 삶의 승리는 인내력에 달려 있습니다. 인내는 성령님의 열매입니다(갈 5:22). 인내는 하나님이 주시는 은총의 선물입니다. 너그러움은 성령님을 의지하고 순종하며 참고 기다림으로 형성되는 성품입니다.

 

우리가 인내의 성품을 얻으려면 무엇보다 하나님 신뢰하기를 배워야 합니다. 성경에 말씀합니다. “여러분 가운데 선한 일을 시작하신 분이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그 일을 완성하시리라고 나는 확신합니다.”(빌 1:6) 하나님을 신뢰하였다가 낭패를 본 사람은 세상에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우리는 모든 일을 완성하시며 놀라운 변화와 성숙의 열매를 가져오실 주님을 신뢰하고 인내함으로 충분히 너그러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하실 일을 바라본다면 어떤 상황에서도 인내하며 너그러울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자신을 되돌아봄으로 인내할 수 있습니다. 우리 자신의 부족함과 실수, 어리석음과 연약함, 좌절과 실패 등 수많은 역경과 어려움 중에도 누군가가 우리 자신을 믿어주었고 기다려주었고, 너그럽게 대해주었기에 우리는 다시 일어설 수 있었습니다. 이 세상에 자수성가란 없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삶을 돌아볼 때 인내하며 다른 사람에게 너그러울 수 있습니다. 

 

인내하고 너그러운 사람은 다른 사람을 현재가 아닌, 미래에 성숙할 모습에 초점을 맞춥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인내와 너그러움은 서로에게 성장할 기회를 줍니다. 예수님은 단 한 번도 우리가 완전해져야 그분을 섬길 수 있다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성경의 모든 위대한 믿음의 사람들은 예외 없이 많은 단점과 문제점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의 현재가 아닌 변화할 모습을 기대하시고 너그럽게 받아주셔서 큰 믿음의 선조들이 되게 하셨습니다. 당신은 너그러운 사람입니까? 너그러운 사람이 이깁니다. 각박한 세상일수록 너그러움이 빛납니다. 주님을 닮아 서로 너그럽기 그지없는 복되고 거룩한 주님의 자녀로 빛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4. 다듬으심
   1) 주일 예배를 통해 경험하고 감동받거나 느낀 것은 무엇인가요?
   2) 누군가를 너그럽게 대한 경험이 있나요? 자유롭게 나눠봅시다.
   3) 내가 너그러움의 성품을 갖지 못하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4) 앞으로 한 주간 삶 속에서 말씀을 어떻게 적용할지 구체적으로 한 가지만 나눕니다.

 

5. 들어쓰심
   1)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기 위한 결단과 헌신의 기도하기
   2) VIP(전도대상자), 개인, 가정, 교회, 선교, 나라를 위한 합심, 중보기도

 

6. ◾ 가 정 : 말씀나눔    ◾ 소그룹 : 말씀나눔/ 소식나눔/ 헌금찬송 449장/ 주기도문

 

7. 금주의 암송구절 : 금주의 암송구절을 함께 외웁니다.(요한복음 15:7)
 ◾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