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625 동수교회 1부 예배 실황 영상 "가장 좋은 것"

작성 동수교회
날짜 2023-06-25
설교한 날
2023/06/25 일
성경 본문
마태복음 28:18-20
설교
주학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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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좋은 것(마태복음 28:18-20)

 

1. 환영과 찬양
   ◾ 기쁨으로 서로 환영하며 축복합니다. 잠시 교제의 시간을 가집니다. 
   ◾ 찬송 23장      ◾  복음송  성령이여 임하소서      ◾ 기도  맡은이 혹은 합심기도

 

2. 먼저오심 
   1) 지난 한 주간의 이야기(행복, 고마움, 힘듦)를 서로 나눕니다.
   2) 지난 한 주간 어떤 기도를 했는지 서로 이야기합니다.

 

3. 만나주심 
   ◾ 성경본문 : 마태복음 28:18-20

 

존 웨슬리는 어린 시절 어머니 수산나를 통하여 성경과 청교도적 가치를 배웠고, 거룩한 삶의 규율을 몸에 익혔습니다. 그는 대학을 졸업 후 대학원에 진학하고 공부하면서 성직자의 길을 걷기로 결심하며, 독서를 통해 큰 감명을 받게 되고 사제 서품도 받게 됩니다. 1725년에 그는 하나님께 자신의 삶을 드리기로 결단하였는데 그의 목표는 “완전한 헌신, 완전한 성화, 완전한 사랑, 완전한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이 즈음 동생인 찰스 웨슬리는 그가 조직한 신성클럽(Holy Club)에 형을 초청하면서 존 웨슬리에게 이 모임의 리더가 되어달라고 하였습니다. 이때부터 존은 신성클럽에 참여하고 리더로 활동는데 이 모임이 바로 메도디스트(감리교) 운동의 요람이 되었습니다. 이들은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을 금식일로 정하였고, 함께 모여 독서와 대화와 기도를 통하여 경건의 삶을 증진하기 위해 힘썼습니다. 1735년에는 신성클럽 회원이 40여 명이 되었습니다. 또한, 시간이 지나면서 개인 경건 추구뿐만 아니라, 구제와 봉사에도 참여하였습니다. 감옥을 정기적으로 방문하여 갇힌 자들의 필요를 채워주고, 빚으로 감금된 사람들의 빚을 청산해주면서 전도를 하기도 하였습니다. 주변의 병자들과 가난한 자들을 찾아가 도와주고, 극빈자 자녀들을 모아 옥스퍼드 대학 내에 간이학교를 세워 가르치기도 하였습니다. 신성클럽의 회원인 청년들의 생활은 대단히 규칙적이었고, 정기적이었고, 간결하고 정확했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사람들은 이들을 메소디스트(규칙주의자)라고 부르기 시작하였고, 이것이 감리교(메소디스트)라는 이름이 되었습니다. 

 

옥스퍼드의 메소디스트들은 초대교회의 성도들과 같이 경건과 자비를 병행하는 실천적인 성결을 이루었습니다. 경건 서적과 고전을 읽는 지적인 모임에서 시작하여 경건훈련과 사랑의 실천으로 확장되면서 거룩한 복음 운동으로 성장해갔습니다. 먼저 자신을 개혁하고, 교회를 개혁하고, 사회를 개혁하는 진정한 생명 복음 운동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존 웨슬리는 신성클럽을 가리켜서 ‘성경 그리스도인 Bible Christian’이라고 불렀는데, 진정한 기독교 신앙이란 성경에 나타난 그리스도를 믿으며, 그리스도를 따르며, 모든 언행에서 그리스도와 일치하는 삶을 사는 것이라고 말하였습니다. 성경에 나타난 그리스도와의 일치를 추구하는 모임이 신성클럽이었던 것입니다.

 

1735년 10월 14일 존 웨슬리는 동생과 함께 미국 조지아주로 선교 활동을 위해 출발하여 다음 해에 도착합니다. 119명이 탔던 이 배에는 독일 모라비안 교도들도 함께 타고 있었습니다. 항해하면서 풍랑을 만나면 모두가 죽음의 공포에 떨며 비명을 질렀지만, 모라비안 교도들은 조금도 흔들림 없이 평화 가운데 자신들을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찬송하였습니다. 웨슬리는 이 모습에 충격을 받습니다. 자신이 자부하던 메소디스트들에게 경건의 규칙과 습관과 활동은 있었지만, 성령의 능력으로 누리는 속죄의 은혜와 평화가 없음을 깨닫습니다. 이후 존 웨슬리는 계속 모라비안 목사 스팡겐베르그(Spangenberg)를 만나면서 신앙에 큰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성령체험에 눈을 떴고, 구원에 이르는 믿음과 은혜를 추구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인류를 구원하신 구세주에서 자신을 구원하신 주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존 웨슬리의 조지아 선교는 실패였습니다. 인간관계와 영적인 삶에서 깊은 좌절을 맛보며 낙심한 채 2년 만에 런던으로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영국으로 돌아온 후로 독일에서 온 모라비안 목사 피터 뵐러(P. Bohler)를 알게 되었는데, 존보다 9살이나 어렸지만 존에게는 영적 멘토였습니다. 존은 뵐러를 통하여 회개를 통하여 믿음으로 얻는 구원에 관해 계속 집중하였습니다. 1738년 5월 21일에 동생인 찰스 웨슬리는 심각한 늑막염을 앓던 중 회심의 체험과 함께 늑막염이 깨끗하게 치유되는 기적을 경험하였습니다. 사흘 뒤인 5월 24일 수요일 밤에 존 웨슬리는 런던의 올더스게이트 거리에 있는 한 신도회에 참여하였다가 마틴 루터의 로마서 주석 서문을 읽는 것을 듣던 중 놀라운 회심을 경험하였습니다. 웨슬리는 일기에 이렇게 적어 놓았습니다. “저녁에 나는 별로 내키지는 않았지만 올더스게이트에 있는 신도회에 갔다. 그곳에서 어떤 사람이 루터의 로마서 서문을 읽고 있었다. 8시 45분경 그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해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변화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동안, 나는 마음이 이상하게 따뜻해지는 것을 느꼈다. 나는 나 자신이 구원을 얻기 위해 오직 그리스도 한 분만을 믿는다고 느꼈다. 그리스도께서 나의 죄, 곧 이 비참한 내 죄까지도 제거하셨고, 죄와 사망의 법에서 나를 구원하셨다는 확신이 들었다.”

 

이 거듭남의 체험은 천주교회의 공로주의적인 구원론과 같은 선행과 경건의 형식에 치우쳐 있던 신념을 깨뜨리는 사건이었습니다. 그동안 존 웨슬리는 완전한 성화를 갈망하였지만, 자신의 도덕적인 노력만으로는 결코 그것을 이룰 수 없음을 깨달았고, 조지아 선교의 실패를 통하여 자신의 연약함과 무능함을 느끼고 낙심하였는데, 바로 그때 ‘예수님이 나를 위하여 죽으셨으며, 예수님이 나를 위하여 피 흘리셨다’는 사실이 믿어짐으로 구원의 은혜를 체험한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웨슬리는 종의 믿음에서 아들의 믿음을 얻었으며, 율법주의에서 복음주의로 변화되었고, 도덕적 선행이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구원의 도리가 확립되었습니다. 회심의 체험은 후에도 이어졌는데 1739년 새해에는 60여 명이 모인 페터레인 신도회(Fetterlane Society) 모임에서 마가의 다락방과 같은 성령강림의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당시 영국 사회는 18세기에 들어서면서 산업혁명이 일어나고 자본주의가 형성되고, 공업의 발전과 산업도시가 형성되었으며, 도시인구가 급증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영국 인구의 70-80%가 노동자와 광부와 같은 하층 노동계급으로 전락하여 열악하고 비참하게 살았습니다. 도시에는 술집, 사창가, 도박장, 투견장이 넘쳐났고 살인, 강도, 도둑질, 싸움이 빈번하였습니다. 가정은 파탄되었고, 감옥은 차고 넘쳤습니다. 산업혁명으로 인한 노동력 착취, 저임금, 비인간적 노동환경, 실업, 도덕적인 타락과 함께 정치는 뇌물, 부정부패, 불법, 사기, 속임수가 판을 쳤습니다. 영국국교회마저 정치 권력과 결탁하여 사회를 변화시키기는커녕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하는 절망의 시대가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교회 강단에서는 복음이 사라지고, 계시와 영성을 무시하는 지적인 이신론과 율법주의적인 가르침만 넘쳐났습니다.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노예제도였습니다. 노예제도는 18세기 영국의 최악의 비인간적으로 불의한 사회문제였습니다. 16세기 중엽부터 노예매매를 해온 영국은 노예매매로 엄청난 부를 누렸습니다. 150년간 영국은 200만 명이 넘는 노예를 잡아 왔는데 국가 재정의 3분의 1이 노예 수송으로 얻은 수입이었습니다.

 

바로 이런 상황에서 존 웨슬리가 등장합니다. 웨슬리의 가시적인 등장은 야외설교를 통해서 두드러졌습니다. 처음에 웨슬리는 야외 설교가 자신과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웨슬리는 키가 167cm로 단신입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외모에 신경을 썼으며 모델처럼 깔끔하고 신사적인 옷차림을 하였고, 성의에는 먼지 하나 없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는 사람이 북적대거나 소란스러운 것을 좋아하지 않았으며 그의 설교는 예배실이나 강의실과 같이 정숙한 상황에 익숙했습니다. 그러나 회심한 이후 웨슬리의 마음은 변화되었습니다. 그는 사람들의 삶의 자리로 가기로 했습니다. 

 

마침 존 웨슬리가 사역하던 브리스톨 지역은 주변에 석탄과 주석 광산의 개발로 광산노동자들이 많은 무역항구였습니다. 또한, 언제나 수천 명의 노예가 매매되는 곳이었습니다. 존 웨슬리는 이곳에서 야외설교를 시작하였습니다. 하나님 은혜의 부르심 앞에 웨슬리는 자신을 내려놓았습니다. 존 웨슬리의 야외설교에는 엄청난 회심과 변화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하지만 국교회에서는 이를 달갑지 않게 여겼습니다. 하지만 웨슬리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1739년 4월~12월에 존 웨슬리는 약 500회의 설교를 하였는데 교회에서 한 것은 8회에 불과했습니다. 감리교의 복음 운동은 야외설교를 통해 불길같이 퍼져나갔습니다. 이때 웨슬리가 한 유명한 말이 “온 세상이 나의 교구다. The world is my parish.”입니다. 1739년 5월에 존 웨슬리는 3,000명 앞에서 설교한 이후부터 말을 타고 영국 잉글랜드와 북쪽 스코틀랜드, 아일랜드까지 다니며 설교하였습니다. 폭도들의 폭행과 죽음의 위기를 수 없이 겪었지만 폭도들 조차 웨슬리가 설교하는 자리에서 은혜받고 변화되는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이 복음 운동과 설교로 회심한 사람들이 몰려들면서 웨슬리는 이들을 돌보고 세우기 위해 브리스톨에 1739년 5월 12일, 감리교 최초의 예배당인 뉴룸을 세웠습니다. 11월에는 런던의 파운드리 철공장을 빌려 예배당으로 사용하다 매입하여 교회를 세웠고 웨슬리 채플이 되었습니다. 이때 웨슬리는 몰려드는 사람들을 신앙으로 잘 지도하기 위해 소그룹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최고의 행정 조직가요 소그룹 운동의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이 소그룹이 감리교회의 속회입니다. 웨슬리는 50여 년에 걸쳐 영국 전역을 순회하며 평생 334,672km를 달려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존 웨슬리는 언제나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위한 목회를 하였습니다. 그는 감옥에 갇힌 자들을 찾아보는 것을 의무라고 하였으며 “나는 가난한 자를 위한 하나님의 청지기입니다.”라고 말하기도 하였습니다. 웨슬리는 영국에서 노예제도를 폐지하는데도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훌륭한 정치가였던 의원 윌리엄 윌버포스(Wm Wilberforce)를 돕고 격려하였습니다. 비록 웨슬리가 죽은 이후이지만, 여 1807년 노예무역 제도는 폐지되었으며, 1833년 영국에서 모든 노예를 해방하는 법령이 선포되었습니다. 웨슬리의 지대한 영향력의 결과입니다. 감리교 운동의 특징이 사회 변혁과 사회 성화인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감리교의 신앙은 개인 경건과 함께 사회 변혁과 성화를 매우 중요하게 여깁니다. 교회는 세상의 문제와 아픔에 관심을 가지고 변화와 개혁을 일으켜야 합니다. 세상이 울 때 함께 울고 품어주어야 합니다. 소외되고 버림받은 사람들을 찾아가 위로하고 도와주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누어주어야 합니다. 열심히 전도하고, 열심히 섬기는 일을 함께하는 것입니다. 흔히 웨슬리의 신앙과 전통은 균형과 조화라고 말합니다. 전도와 봉사, 개인과 사회, 교회와 세상, 사회의 모든 계층과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힘써야 합니다. 

 

우리 교회가 이 시대에 진정한 소망이 되는 교회, 세상을 살리고 천국을 세우는 교회가 되는 길은 이미 우리 앞서가신 믿음의 선진들을 잘 따라가는데 있습니다. 우리 모두 한마음이 되어 이렇게 바른 믿음의 길을 걷는다면 우리의 삶은 물론, 교회와 가정과 사회가 행복하고 건강하고 정의로운 사회로 성장해 갈 것입니다. 1791년 3월 2일 웨슬리는 천국으로 가셨습니다. 그가 마지막 유언으로 남긴 말은 그가 어떤 사람이었으며, 무엇을 위해 살았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모든 것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시는 것이다. The best of all is, God is with us.” 존 웨슬리 목사님은 이 가장 좋은 것을 믿고, 품고, 따르고, 사랑하다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하였습니다. 우리의 삶도 그러하기를 축복합니다. 모든 것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시는 것입니다. 아멘.

 

 

4. 다듬으심
   1) 주일 예배를 통해 경험하고 감동받거나 느낀 것은 무엇인가요?
   2) 존 웨슬리 목사님과 같은 복음의 뜨거운 열정이 ‘나’에게도 있나요?
   3) 존 웨슬리 목사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무엇인가요?
   4) 앞으로 한 주간 삶 속에서 말씀을 어떻게 적용할지 구체적으로 한 가지만 나눕니다.

 

5. 들어쓰심 
   1)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기 위한 결단과 헌신의 기도하기
   2) VIP(전도대상자), 개인, 가정, 교회, 선교, 나라를 위한 합심, 중보기도

 

6. ◾ 가 정 : 말씀나눔    ◾ 소그룹 : 말씀나눔/ 소식나눔/ 헌금찬송 388장/ 주기도문

 

7. 금주의 암송구절 : 금주의 암송구절을 함께 외웁니다.
 ◾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가복음 10:43-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