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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나인가? 왜 지금인가?(에스더 4:13-17)
1. 환영과 찬양
◾ 기쁨으로 서로 환영하며 축복합니다. 잠시 교제의 시간을 가집니다.
◾ 찬송 15장 ◾ 복음송 오직 주의 사랑에 매여
◾ 기도 맡은이 혹은 합심기도
2. 먼저오심
1) 지난 한 주간의 이야기(행복, 고마움, 힘듦)를 서로 나눕니다.
2) 지난 한 주간 어떤 기도를 했는지 서로 이야기합니다.
3. 만나주심
◾ 성경본문 : 에스더 4:13-17
에스더라고 하면 우리에게 떠오르는 단 한마디의 대사가 있는 것 같습니다. ‘죽으면 죽으리이다’ 정말 많은 그리스도인에게 알려져 수많은 말씀과 신앙의 결단으로 이야기되는 말씀이죠.
비극 속의 섭리
에스더 2장 7절은 에스더라는 인물의 비극적인 출발을 보여줍니다. "부모가 없었으나 용모가 곱고 아리따운 처녀라"는 표현은 그녀의 외적인 아름다움과 더불어, 고아로 살아가야 했던 연약한 인생의 현실을 동시에 보여줍니다. 당시 고아는 구약 성경에서도 과부, 나그네와 함께 사회적 약자의 상징이었고, 누구의 보호도 없이 철저히 버려질 수 있는 처지였습니다. 그런 에스더는 사촌 모르드개의 보호를 받게 됩니다. 모르드개는 그녀를 친딸처럼 양육하며, 페르시아 땅에서 유대인의 정체성을 지키며 살아가도록 도왔습니다.
에스더의 비극적인 삶은 더 있었습니다. 에스더는 처음부터 스스로 선택한 길을 걷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상황과 타인의 결정에 의해 삶이 결정되는 인물이었습니다. 왕비가 된 과정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에스더가 왕비가 되고 싶어 준비한 것이 아니라, 모르드개의 말을 따라 당시 페르시아 왕국의 왕후 와스디가 폐위된 뒤 새로운 왕비를 찾는 제도에 따라 시험에 참여하게 되었고,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왕의 눈에 들어 왕후의 자리에 오르게 됩니다. 그녀는 왕비가 된 이후에도 정체성을 숨기고 살아야 했고, 자신의 의지를 자유롭게 펼칠 수 없는 상황 속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 모든 비극의 과정을 기적으로 바꾸셨습니다.
첫 번째 기적은 에스더의 ‘약점’이 오히려 ‘강점’이 되었다는 점입니다. 고아였기에 모르드개와 함께 자랄 수 있었고, 모르드개와 함께 자람으로 페르시아 문화에 대한 이해도와 유대인의 정체성을 동시에 지닌 인물로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그 결과 그녀는 새로운 환경에서도 적응하고, 후에는 왕비로서 바른 판단과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었습니다.
두 번째 기적은 철저한 훈련의 시간이었습니다. 에스더는 왕비가 되기 전 오랜 시간 동안 몰약과 향품으로 몸을 정결하게 하는 훈련을 합니다. 표면적으로는 미용과 치장을 위한 시간이었지만, 그 속에는 왕궁의 문화, 예절, 그리고 왕과의 관계 속에서 필요한 모든 태도를 익히는 철저한 준비의 시간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이는 고통스럽고 지루할 수 있는 시간이었지만, 결국 페르시아의 왕비로서 부족함 없이 세워지는 과정이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에스더의 삶에서 벌어지는 많은 일들은 겉으로 보기엔 ‘우연’ 같아 보이지만, 실제로는 하나님께서 치밀하게 준비하신 ‘섭리’였습니다. 왕비가 폐위된 것도, 에스더가 왕의 눈에 띄게 된 것도, 결국 하나님께서 유대 민족을 구원하시기 위한 계획 안에 있었던 것입니다.
이때를 위함이 아닌지
하지만 위기는 찾아옵니다. 모르드개가 하만에게 절하지 않자, 하만은 유대인 전체를 말살하려는 음모를 꾸밉니다. 이에 모르드개는 왕비가 된 에스더에게 나서 줄 것을 요청합니다. 처음에 에스더는 두려워하며 “왕이 부르지 않았는데 나아가면 죽을 수도 있다”고 말합니다. 이는 당시 법에 따른 현실적인 공포였으며,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반응입니다.
그럼에도 모르드개는 말합니다. “이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 에스더의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그녀는 결국 결단합니다. “죽으면 죽으리이다.” 이 고백은 단순한 용기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위해 자신의 생명까지도 내려놓겠다는 믿음의 표현이었습니다.
우리는 이 고백을 통해 중요한 신앙의 원리를 배웁니다. 우리의 삶에도 내가 원하지 않았던 자리에 서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원치 않는 책임이 주어지고, 도망치고 싶은 환경 속에 놓일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내가 왜 이 자리에 있어야 하나?", "왜 나입니까? 왜 지금입니까?"라는 질문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성경은 말합니다. 하나님은 아무나 그 자리에 사람을 세우지 않으십니다. 요셉도 자신의 꿈으로 인해 억울한 노예의 자리, 감옥의 자리까지 갔지만 그 고통의 자리가 하나님이 두신 자리, 하나님이 생명을 살리기 위해 허락하신 자리라는 것을 알고 형들을 용서합니다. 사도 바울도 로마 시민권자라는 안정된 삶과 복음 사이에서 안정된 삶을 내려놓고, 복음을 위해 자신의 생명조차 아끼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중요한 시점에서 결단의 순간을 맞이합니다. 그것은 편안한 삶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길입니다. 에스더가 그러했고, 예수님께서도 십자가를 앞에 두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사도 바울도 “복음을 전하기 위해 내 목숨도 아깝지 않다”고 고백했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를 세상 한복판에, 삶의 구체적인 자리 가운데 제사장으로 세우십니다. 그 자리가 좁고, 외롭고, 때로는 이해되지 않아도, 하나님은 그 자리를 통해 우리를 준비시키고, 사용하시고, 생명을 살리는 도구로 삼으십니다. 지금이 바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신뢰해야 할 때입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종종 우리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드러나고, 우리가 그 섭리에 믿음으로 반응할 때 하나님의 구원과 은혜는 더욱 분명히 나타납니다.
죽으면 죽으리이다
에스더의 이야기는 단순한 이스라엘 민족 구원 역사 이야기가 아닙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이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는 물음으로 다가옵니다. 그리고 우리도 "죽으면 죽으리이다"라는 고백으로 하나님께 응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바로 그 고백이, 우리 인생의 전환점이자 하나님의 기적이 시작되는 순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실존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십니다. 지금 내가 처한 자리가 비록 이해되지 않고 도망치고 싶은 곳일지라도, 그 자리는 하나님이 택하신 특별한 자리일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삶의 자리에서 제사장으로, 예배자로, 하나님의 사람으로 우뚝 서기를 소망합니다.
4. 다듬으심
1) 주일 예배를 통해 경험하고 감동받거나 느낀 것은 무엇인가요?
2) 에스더의 삶은 사회적 약자로 비극적인 출발처럼 보입니다. 내가 생각하던 ‘약함, 부족함, 상처’가 오히려 하나님의 손에 쓰임 받은 경험이 있었습니까? 자유롭게 나눠봅시다.
3) 모르드개의 말은 에스더에게 결단의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는 질문에, 에스더는 “죽으면 죽으리이다”라고 응답합니다. 지금 내가 처한 삶의 자리(직장, 가정, 교회 등)에서 “왜 나입니까?” 라고 묻고 계신가요? 아니면 “하나님이 세우셨다” 고 받아들이고 계신가요?
4) 앞으로 한 주간 삶 속에서 말씀을 어떻게 적용할지 구체적으로 한 가지만 나눕니다.
5. 들어쓰심
1)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기 위한 결단과 헌신의 기도하기
2) VIP(전도대상자), 개인, 가정, 교회, 선교, 나라를 위한 합심, 중보기도
6. ◾ 가 정 : 말씀나눔
◾ 소그룹 : 말씀나눔/ 소식나눔/ 헌금찬송 183장/ 주기도문
7. 금주의 암송구절 : 금주의 암송구절을 함께 외웁니다.
◾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요한복음 15: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