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630 동수교회 주일 예배 실황 영상 "그날을 확신하면 오늘이 달라집니다"

작성 동수교회
날짜 2024-06-29
설교한 날
2024/06/30 일
성경 본문
빌립보서 1:3-6
설교
주학선 목사

<온라인 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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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을 확신하면 오늘이 달라집니다(빌립보서 1:3-6)

1. 환영과 찬양

◾ 기쁨으로 서로 환영하며 축복합니다. 잠시 교제의 시간을 가집니다. 

◾ 찬송 38장 ◾  복음송 주 선한 능력으로 안으시네 ◾ 기도 맡은이 혹은 합심기도

2. 먼저오심 

1) 지난 한 주간의 이야기(행복, 고마움, 힘듦)를 서로 나눕니다.

2) 지난 한 주간 어떤 기도를 했는지 서로 이야기합니다.

3. 만나주심

◾ 성경본문 : 빌립보서 1:3-6

빌립보의 성도들에게 은혜와 평화의 축복으로 인사를 한 바울은 그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표현합니다. “나는 여러분을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3절) “생각”이라는 단어는 “기억하고 언급하다”라는 뜻입니다. 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을 기억할 때마다 하나님께 기도하였으며, 기도할 때마다 감사가 흘러넘치고 기쁨으로 기도를 계속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기도가 핵심이다

3-4절에서 강조되는 표현이 있는데 그것은 “모든”이라는 단어입니다. ‘모든’ 이라는 표현을 통해서 바울은 빌립보 성도들 간에 있는 갈등을 염두에 두면서 그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임을 생각하기를 바랐습니다. 또한, 바울 자신은 누구의 편을 들어주려는 것이 아니라, 모두를 사랑하며 모두를 위해 기도하고 있음을 드러냅니다. 빌립보서에서 ‘모든’이라는 단어는 기도와 관련된 구절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바울의 선교적 여정과 목회의 삶에서 기도가 얼마나 중요하였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기도는 바울 목회의 핵심 사역이었습니다. 비록 로마 감옥에 감금된 상황이지만, 바울은 제한된 공간과 시간 안에서 원망하거나 두려워한 것이 아니라, 그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사역을 하였습니다. 빌립보에 직접 가서 그리운 성도들을 돌보고 격려하고 세워주며 사랑의 교제를 나눌 수는 없었지만, 그는 오히려 기도를 통하여 그들을 섬기고 사랑하고 함께하였습니다. 바울은 기도 안에서 자유로웠으며, 기도로 능력을 얻었으며, 기도로 자신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랐습니다.

바울은 “나의 하나님께” 감사드린다고 합니다. 이를 통해 바울은 비록 자신이 감옥에 갇혀 있지만, 하나님과 깊고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음을 드러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우리의 모든 것을 결정합니다. 우리가 진정한 기쁨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우리의 영적 삶의 기초가 든든해야 합니다. 그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과 맺은 견고한 관계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기도의 시작입니다. 기도의 대상은 하나님이며, 기도의 초점은 하나님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깊고 친밀한 관계가 맺어질 때 진정한 기도가 가능합니다.

감사와 기도

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을 기억할 때마다 하나님께 감사하였으며, 그들 모두를 위하여 늘 기쁜 마음으로 간구하였습니다. “간구”라는 단어는 ‘구체적인 청원의 기도’를 의미합니다. 이렇게 기도할 때마다 바울은 “기쁜 마음”으로 하였다고 말합니다. 바울은 기도할 때마다 감사하였고, 감사할 때마다 마음에 기쁨이 넘쳤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성도의 기쁨이 어디서 오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감사입니다. 감사가 기쁨의 문입니다. 기도가 감사가 될 때 기쁨의 삶이 열립니다. 바울이 빌립보 성도들을 생각하고 기억할 때마다 좋은 일만 있었던 것일까요? 아닙니다. 바울은 빌립보 성도들 간의 갈등도 알고 있었으며, 자신을 도와주던 에바브로디도가 죽을병으로 고생하기도 하였으며, 언제 사형 선고가 내려질지 모르는 상황에 감옥에 갇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감옥은 절망이 아니라 부활의 주님이 함께하시는 평화와 생명의 공간이었습니다. 그의 마음은 갇히지 않았고, 눌리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부르는 친밀하고 거룩한 교제가 계속되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환경과 상황에서도 만족할 줄 안다면 바로 그 마음에서 감사가 나오게 됩니다. 내가 지금 어떤 상황에 있던지 하나님의 사랑은 영원하시다는 믿음,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믿음이 있을 때 우리는 우리 삶을 긍정하며 만족하게 됩니다. 하나님과의 견고한 관계 안에서 바울은 어떤 환경에서도 만족할 줄 알았습니다. 맑고 밝은 믿음의 눈을 가진 성도는 감사할 것들을 더욱 많이 봅니다. 믿음이 깊어지고 자랄수록 감사하는 마음도 커집니다.

바울이 감사로 기도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울은 “여러분을 생각할 때마다”(3절) 감사한다고 하였습니다. 생각이(think) 감사를(thank) 가져오고 감사가 우리를 기쁨으로 인도합니다. 빌립보의 성도들이 감사의 이유였습니다. 바울의 생각 속에는 빌립보의 성도들이 있었으며, 빌립보의 성도들의 마음에는 바울이 있었습니다. 바울과 성도들은 서로 감사의 이유가 되었고, 서로에게 기쁨의 존재가 되었습니다. 바울은 특별히 빌립보의 성도들이 복음에 동참한 것이 너무나 고마웠습니다. 바울은 고백합니다. “여러분이 첫날부터 지금까지, 복음을 전하는 일에 동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5절) “첫날”은 바울이 유럽에서 처음 선교 활동을 하며 복음을 선포한 그때를 말합니다. 빌립보는 바울이 그리스 지역으로 와서 처음으로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운 곳입니다. 바울은 이렇게 처음부터 복음의 사역에 빌립보 교회가 동참하고 있는 것을 생각할 때 감사하고 행복했습니다.

복음에 동참하다

“동참한다”라는 단어는 코이노니아라는 단어인데 “친교, 교제, 참여, 함께함” 등으로 번역됩니다. 여기서 코이노니아는 빌립보 성도들이 바울의 복음 선포에 믿음으로 응답하고 영적인 교제를 나누며 선교사역에 마음으로 참여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특별히 물질적인 헌금을 포함하는 의미로도 사용되었습니다. 이렇게 빌립보의 성도들이 “복음에 동참”하였다는 것에는 몇 가지 중요한 뜻이 있습니다. 먼저 그들이 복음을 받아 믿은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말씀을 믿고 십자가 은혜로 구원을 얻어 성도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바울과 빌립보의 성도들은 예수님을 구세주요 주님으로 믿음으로 하나님과 수직적인 관계가 세워졌고, 그 관계는 수평적인 사랑의 관계로 완성되었습니다. 바울은 이렇게 복음으로 맺어진 사랑의 관계를 생각할 때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다음으로 복음에 동참하는 것은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죄에서 자유함을 얻은 성도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누리며 생명과 구원의 복음을 전합니다. 빌립보의 성도들은 바울이 떠난 후에도 쉬지 않고 복음을 전함으로 복음에 동참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확장하고 나누었습니다. 바울은 이런 빌립보의 성도들을 생각하며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또한 복음에 동참하는 것은 복음의 사역을 지원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빌립보의 성도들은 관심과 기도로 바울의 복음 사역을 지원하였고, 재정적인 후원으로 바울의 고난에 동참하였습니다. 그러기에 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을 가리켜 “내가 받은 은혜에 동참한 사람들”(빌 1:7)이라고 말씀합니다. 빌립보의 성도들은 바울의 복음 선교사역을 지원함으로 하나님의 은혜에 동참하였습니다. 바울은 이것이 너무도 고마웠고, 이로 인해 기뻐할 수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큰 기쁨과 감사는 이유는 바로 복음입니다. 생명의 복음이 내게 있는 것이 감사하고, 복음의 교제를 나누는 교회와 성도들로 인해 감사하고, 복음을 전하며 나누는 것이 기쁨인 성도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행복이기를 축복합니다. 

확신합니다

이제 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을 격려하며 확신의 메시지를 고백합니다. “선한 일을 여러분 가운데서 시작하신 분께서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그 일을 완성하시리라고, 나는 확신합니다.”(6절) “선한 일”은 무엇을 말할까요? 그것은 곧 빌립보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어 구원을 받고 성도가 된 것을 말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5절의 말씀처럼 빌립보 성도들이 복음에 동참한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선한 일은 개인의 구원은 물론 공동체적인 복음의 동참(코이노니아)을 포함합니다. 그런데 선한 일은 사람이 시작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시작하신 일입니다. 복음의 선포와 믿음의 행위로 얻은 구원은 하나님이 시작하시고 주도하신 은혜와 사랑의 결과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은 것이며, 우리의 믿음의 성장과 사역도 하나님의 은혜로 인한 것입니다.

여기서 바울은 자신의 확신을 고백합니다. 그것은 선한 일을 시작하신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그 선한 일을 완성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날”은 주님이 오셔서 최후의 심판을 하시는 재림의 날을 의미합니다. 바울은 재림의 심판 날에 하나님께서 선한 일 곧 복음의 구원을 완성하실 것임을 확신 있게 고백합니다. 바울은 이 고백을 통하여 빌립보의 성도들을 구원의 완성에 대한 믿음과 평안의 삶으로 초대합니다.

구원의 과거 미래 그리고 현재

우리는 여기서 구원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적 관점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가운데 이미 선한 일을 시작하셨습니다. 구원의 과거 시점입니다. 또한, 신실하신 하나님은 우리 안에 구원을 시작하셨을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의 날에 구원을 완성하실 것입니다. 구원의 미래 시점입니다. 지금 우리는 그 구원의 완성을 이루어가고 있습니다. 이것이 구원의 현재성입니다. 구원의 시작과 완성 사이에서 오늘을 사는 성도에게는 승리와 영광의 “그날”이 중요합니다. “그날”이 성도의 오늘을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날이 있기에 오늘의 위기와 상황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날이 있기에 오늘의 믿음을 지켜갈 수 있습니다. 우리의 오늘의 삶은 그날에 주님 앞에서 승리의 기쁨을 누리며 하늘의 영광에 참여할 것입니다. 우리의 오늘이 기쁨과 승리의 그날을 맞이하기 위해 이 믿음의 확신이 중요합니다. 

성도의 기쁨과 소망은 믿음의 확신에서 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로 구원받았음을 확신합니까? 이 시간 예수님을 구원의 주님으로 믿고 고백합시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 우리는 영생의 구원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확실합니다. 우리는 이 선물을 빼앗기지 않을 것입니다. 믿음으로 선포합시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요 10:27-28) 하나님은 이 구원을 이루시고 완성하십니다.

하나님은 오늘을 믿음으로 사는 우리에게 승리의 영광을 주시려고 성령님을 보내주셨습니다. 성령님은 지금도 우리와 함께하시며 우리를 도우시고 인도하십니다. 성령님과 함께하면 우리는 우리의 구원과 최후의 승리를 확신할 수 있습니다. 성령님을 의지하십시오. 구원의 확신 위에 서십시오. 복음의 동역자가 되어 그리스도를 닮기에 힘쓰십시오. 구원의 완성을 향해 나아가십시오. 우리 안에 선한 일을 시작하신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그 일을 완성하시기를 확신하고 축복합니다.

4. 다듬으심

1) 주일 예배를 통해 경험하고 감동받거나 느낀 것은 무엇인가요?

2) 바울은 감옥에 갇혀 있었지만, 그에게 감옥은 부활의 주님이 함께 하시는 평화와 생명의 공간이었습니다. 그는 환경과 상황은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환경과 상황에 만족하며 삶은 감사와 기도로 가득한 삶입니까? 자유롭게 나눠봅시다.

3) 빌립보 성도들은 바울의 복음 선포에 믿음으로 응답하고 영적인 교제를 나누며 선교사역에 마음, 물질적 헌금으로 함께 참여하였습니다.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복음에 동참하고 있습니까? 함께 나누며 결단해봅시다. 

4) 앞으로 한 주간 삶 속에서 말씀을 어떻게 적용할지 구체적으로 한 가지만 나눕니다.

5. 들어쓰심 

1)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기 위한 결단과 헌신의 기도하기

2) VIP(전도대상자), 개인, 가정, 교회, 선교, 나라를 위한 합심, 중보기도

6. ◾ 가 정 : 말씀나눔

 ◾ 소그룹 : 말씀나눔/ 소식나눔/ 헌금찬송 545장/ 주기도문

7. 금주의 암송구절 : 금주의 암송구절을 함께 외웁니다.

 ◾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요 1:1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