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609 동수교회 주일 예배 실황 영상 "1,2부: 불확실성 시대를 사는 그리스도인 / 3부: 누가 우리의 왕인가?"

작성 동수교회
날짜 2024-06-08
설교한 날
2024/06/09 일
성경 본문
사무엘상 8:4-9, 18-22
설교
1,2부: 이창현 목사, 3부: 임준호 목사

<온라인 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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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확실성 시대를 사는 그리스도인 (삼상 8:4-9, 18-22)

 

1. 환영과 찬양

◾ 기쁨으로 서로 환영하며 축복합니다. 잠시 교제의 시간을 가집니다. 

◾ 찬송 582장 ◾  복음송 내 눈 주의 영광을 보네 ◾ 기도 맡은이 혹은 합심기도

 

2. 먼저오심 

1) 지난 한 주간의 이야기(행복, 고마움, 힘듦)를 서로 나눕니다.

2) 지난 한 주간 어떤 기도를 했는지 서로 이야기합니다.

 

3. 만나주심

◾ 성경본문 : 사무엘상 8:4-9, 18-22

 

오늘날 우리가 사는 시대는 ‘불확실성 시대’를 너머 ‘초-불확실성 시대’라고 불립니다. 꼭 이런 단어로 정의 내리지 않더라도 급격한 인구감소, 기후변화 그리고 인간의 능력을 넘어선 인공지능의 출현은 우리가 이미 예측 불가능한 시대를 살고 있음을 피부로 느끼게 합니다. 당연히, 사회 모든 분야마다 불확실성 시대에 대응하기 위해서 고심 중입니다. 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미래에 대해 연구하며, 위기를 기회로 만들 전략 수립을 위해서 막대한 예산과 인력을 투자하는 중이지요.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습니까? 그리스도인으로서 불확실성 시대를 맞이할 준비가 되어있습니까?

 

이스라엘에 불확실성 시대가 도래하다. 

오늘 본문 속 이스라엘 장로들은 사무엘을 찾아갑니다. 그리고 “우리를 다스릴 왕을 세워주십시오!”라고 요청합니다. 왕이 필요한 이유로는 사무엘은 늙었고 그의 자녀들은 사무엘만 못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실상 이런저런 핑계로 왕을 요구하지만 이들의 본색은 20절에서 들통납니다. ‘우리도 다른 나라들 같이 되어... ...우리 앞에 나가서 우리의 싸움을 싸워야 할 것이니이다’(20) 이스라엘이 왕을 요구한 진짜 이유은 다른 나라들처럼 왕정국가가 되고 싶은 것이었습니다. 이제 더 이상 지파 별로 서로 다른 지도자가 다스려서 의견 충돌과 조율을 반복하는 국가시스템으로는 살아남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블레셋은 막강한 군사력을 가지고 위협하고 있고, 이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상시 군대를 소집하고 즉각 명령을 내릴 수 있는 왕이 절실히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장로들은 사무엘은 늙고, 그를 이을 지도자는 보이지 않고, 외세의 침략은 거세지는 불확실성 시대에 ‘다른 나라들이 다 왕을 세운 것처럼’ 왕정국가가 되는 길을 선택합니다.

 

다른 나라들처럼 되기를 요청하다. 

다른 나라들처럼 되고자 한 이스라엘의 선택은 꽤 합리적인 것처럼 보입니다. 열 두 개의 지파들이 서로 다른 이견을 조율하는 것보다는 왕의 명령으로 일사불란하고 신속하게 움직이는 것이 효율적인 것이 분명하고, 전쟁이 발발한 후에 사사를 세워 대응하는 것보다 상시 출격할 군대를 갖는 것이 안전한 선택이니 말입니다. 그래서 왕을 세워달라는 이스라엘의 요청은 나라를 위한 최선의 선택처럼 보이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 요청을 듣고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그들이 나를 버려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함이니라’(7) 나라를 위한 최선의 선택이라고 여겼던 왕정국가의 도입이 어째서 하나님을 버리는 일이 되는 것일까요?

 

샅바를 놓아버린 씨름선수가 되다. 

‘이스라엘’은 그들의 조상 야곱이 천사와의 씨름 후에 얻은 새로운 이름입니다. 야곱은 형 에서의 장자권을 훔치고 도망 다니다가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야만 했습니다. 야곱은 화가 난 형이 자신을 죽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두려웠습니다. 그러니 야곱에게 얍복강가는 형이 자신을 죽일지도 모른다는 불확실한 미래를 직면해야 했던 곳이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야곱은 어떻게 했을까요? 야곱은 밤새도록 천사를 붙들고 씨름했습니다. 그리고 ‘발뒤꿈치를 잡는 자’라는 뜻의 야곱은 ‘하나님과 씨름하는 자’란 의미에 ‘이스라엘’이란 새 이름을 얻게 됩니다. 그러니 이스라엘은 불확실한 미래 앞에서도 하나님을 붙드는 씨름선수가 되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의 이스라엘은 그 샅바를 놓아버렸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다스리는 거룩한 나라보다는 인간이 다스리는 강력한 나라가 되기를 선택한 것입니다.

 

창조 작품이 아닌 모조품이 되다.

하나님께서는 애굽의 노예였던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고, 시내 산에 도착했을 때 말씀하셨습니다.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출 18:5-6)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더 이상 누군가의 노예가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으로 거듭나기를 바라셨습니다. 광야는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믿음의 행진하는 훈련이자 순례였습니다. 그리고 이 훈련을 마친 이스라엘이 다른 민족과 구별된 거룩한 나라가 되게 하셔서, 열방이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배하는 꿈을 시작하셨습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입니까?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붙드는 나라가 아닌 다른 나라들처럼 되고 싶어 합니다. 하나님의 창조 작품이 되기를 거부하고 ‘다른 나라들과 같은’ 모조품이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꿈’이 아닌 ‘경고’가 현실이 되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훈련 시키실 때, 그들이 안정을 누린 것도 왕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고, 그들이 패배한 것도 왕이 없었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안정을 누리고 전쟁에서 승리를 거둘 수 있었던 것은, 눈에 보이는 왕은 없지만 가장 강하고 능하신 여호와 하나님께 충성하고 그분의 다스림을 받을 때뿐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시대 변화의 위협 앞에서 이들은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자신을 돌아보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언제 승리하였고, 또 언제 평화를 누릴 수 있었는지를 돌아보고 회개해야 마땅했습니다. 만약 그랬다면 이스라엘은 눈 앞에 사무엘을 본받고 하나님께 더욱 충성하며 하나님만을 섬길 생각을 하게 되지 않았을까요?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스라엘의 눈에는 늙어가는 사무엘과 이에 반해 잘나가는 다른 나라만 보였습니다. 그렇게 이스라엘은 출애굽 사건의 구원받은 백성이 아니라 애굽의 바로를 닮았습니다. ‘그날에 너희는 너희가 택한 왕으로 말미암아 부르짖되 그날에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응답하지 아니하시리라 하니 백성이 사무엘의 말 듣기를 거절하여 이르되 아니로소이다. 우리도 우리 왕이 있어야 하리니’(18, 19) 이런 이스라엘을 기다리는 것은 하나님의 꿈이 아닌 경고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왕을 허락하셨다.

다른 나라처럼 되고 싶어 왕을 세우는 일은 분명 하나님을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왕을 세우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만이 왕 되심을 거스르는 선택이라면 어째서 하나님께선 왕을 세울 것을 허락하셨을까요?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버린 것과 같이 하나님도 이스라엘을 버리신 것일까요?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신명기 17장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만일 우리도 우리 주위의 모든 민족들 같이 우리 위에 왕을 세워야겠다는 생각이 나거든 반드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자를 네 위에 왕으로 세울 것이며... ...그가 왕위에 오르거든 이 율법서의 등사본을 레위 사람 제사장 앞에서 책에 기록하여 평생에 자기 옆에 두고 읽어 그의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우며 이 율법의 모든 말과 이 규례를 지켜 행할 것이라” 이스라엘은 왕을 세운 후에 사울과 같은 왕으로부터 하나님의 경고가 현실이 되는 삶을 경험합니다. 그리고 이후로 하나님께 충성하는 자, 비록 범죄하며 넘어지기도 하지만 자신을 돌아보고 철저히 회개하는 왕 다윗을 세우십니다. 다윗을 통해 하나님께 충성하며 하나님의 통치를 대리하는 왕을 통해 평화와 번영의 때를 맞이하게 하십니다. 

 

버림마저도 은혜를 담는 그릇으로 만드시는 분

이 평화와 번영의 경험은 이 후로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의해 멸망 당하는 초-불확실성의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을 때, 이스라엘이 무너지지 않는 힘이 됩니다. 이스라엘은 다시금 그들을 구원할 참된 왕을 소망하며 고난 중에도 하나님을 붙들고 씨름하는 민족이 되기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왕정을 선택한 이유는 다른 나라들처럼 되는 불순한 동기였지만, 하나님은 그마저도 다른 나라가 아닌 하나님의 나라가 되는 일에 사용하여 주십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버림마저도 은혜를 담는 그릇이 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마치, 십자가가 제자들의 배신과 민족의 불신으로 예수님을 버린 사형틀이었지만, 하나님께서 십자가를 인류를 구원하시는 길이 되게 만드신 것처럼 말입니다. 

 

 

불확실성의 시대의 그리스도인

그리스도인은 불확실성 시대를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우리는 다른 나라가 아닌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란 사실을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그리고 확실히 붙잡아야 할 것 역시 하나님의 말씀임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불확실한 시대에 세상 사람들이 더 안전하고 높은 확률의 선택을 하며 살고자 할 때에 그리스도인은 이 불확실한 시대를 뚫고 나갈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도우심을 구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목적이 불확실성 시대에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불확실성 시대에 가장 확실한 복음을 땅끝까지 전하는 것임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다른 나라처럼 되기보다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살기를 꿈꾸는 우리가 되길 축복합니다. 

 

 

4. 다듬으심

1) 주일 예배를 통해 경험하고 감동받거나 느낀 것은 무엇인가요?

2) 언제 가장 불안하고 염려하게 되나요? 이 불안과 염려에 어떻게 대처하시나요?

3) 나의 믿음 또는 선행이 타인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친 경험이 있다면 나눠봅시다. 

4) 앞으로 한 주간 삶 속에서 말씀을 어떻게 적용할지 구체적으로 한 가지만 나눕니다.

 

5. 들어쓰심 

1)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기 위한 결단과 헌신의 기도하기

2) VIP(전도대상자), 개인, 가정, 교회, 선교, 나라를 위한 합심, 중보기도

 

6. ◾ 가 정 : 말씀나눔 ◾ 소그룹 : 말씀나눔/ 소식나눔/ 헌금찬송 185장/ 주기도문

 

7. 금주의 암송구절 : 금주의 암송구절을 함께 외웁니다.

 ◾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마 22:37-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