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910 동수교회 3부 예배 실황 영상 "서로 용서십시오"

작성 동수교회
날짜 2023-09-09
설교한 날
2023/09/10 일
성경 본문
마태복음 6:9-15, 에베소서 4:31-32
설교
주학선 목사

<온라인 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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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용서하십시오(마태복음 6장 9-15절, 에베소서 4장 31-32절)

1. 환영과 찬양

◾ 기쁨으로 서로 환영하며 축복합니다. 잠시 교제의 시간을 가집니다. 

◾ 찬송 19장 ◾  복음송 내가 지금까지 지내온 것은 ◾ 기도 맡은이 혹은 합심기도

 

2. 먼저오심 

1) 지난 한 주간의 이야기(행복, 고마움, 힘듦)를 서로 나눕니다.

2) 지난 한 주간 어떤 기도를 했는지 서로 이야기합니다.

 

3. 만나주심 

◾ 성경본문 : 마태복음 6장 9-15절, 에베소서 4장 31-32절

 

요셉의 생애에 가장 빛나는 순간은 그가 꿈을 해몽한 순간도, 총리대신이 된 순간도, 아버지를 만난 순간도 아니었습니다. 형들을 용서한 것이야말로 가장 빛나는 순간이었습니다. 오늘의 주제는 용서입니다. 우리 가운데 용서가 필요하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용서하고 용서를 받아야 할 사람입니다. 고통을 당하고 상처를 받으면 용서보다는 먼저 상대방에 대한 원망과 복수심이 생깁니다. 때로는 몇 년, 몇십 년이 흘러도 상처에 매여 미움과 고통 속에 지내기도 합니다. 마음의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기 때문입니다. 해결되지 않은 상처는 뿌리가 깊기 때문입니다. 뿌리 깊은 상처는 스노우볼(워터볼)과 같습니다. 평소에는 괜찮다가도 어떤 상황이 되면 깊이 잠겨 있던 상처와 아픔이 뒤엉켜 마음을 혼란하게 만듭니다. 마음을 찌르는 고통이 다시 일어납니다. 분노가 다시 치밀어 오르고 마음이 혼란해집니다. 뿌리 깊은 상처가 아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해결되지 않은 상처는 영적 성장의 큰 걸림돌입니다. 과거의 상처에 얽매여 있는 한 누구도 더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합니다. 깊은 상처는 우리의 영적 생활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파괴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용서는 바로 이 문제를 해결하는 주님의 길입니다.

 

용서란?

 

용서란 무엇일까요? “누가 누구에게 불평할 일이 있더라도, 서로 용납하여 주고, 서로 용서하여 주십시오. 주님께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과 같이, 여러분도 서로 용서하십시오.”(골 3:13) 서로 용납하여 주고, 다음으로 서로 용서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용납”은 상대방의 말이나 행동이 미성숙하여 행하는 실수들, 때로는 선하고 좋은 마음과 뜻으로 하였는데 막상 잘못된 결과가 생긴 일들에 대한 우리의 태도입니다. 반면에 “용서”는 용납보다 훨씬 깊고 넓습니다. 물론 용납할 일과 용서할 일이 정확하게 구분되지는 않습니다. 용납과 용서는 같은 의미로 사용될 때도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내가 너그러운 마음으로 그냥 받아들이고 기다려줄 수 있는 것이면 용납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냥 받아주거나 기다려 줄 수 없는 그릇된 행동, 거짓말, 악한 행동, 배반, 관계 파괴, 신앙의 틀을 넘어선 잘못된 행위, 사랑의 공동체인 교회를 무너뜨리는 행위는 용납이 아니라 용서가 필요한 일들입니다. 이런 일들은 나와 다른 사람에게도 아픔과 고통을 주는 일들입니다.

 

우리는 보통 ‘용서’에 조건을 답니다. 그러나 용서에 조건을 달면 실제로 용서할 일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성경이 말씀하는 용서는 온전하고 무조건적입니다. 용서는 상대방이 받을 만한 자격이나 가치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베푸는 진정한 사랑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 저 사람들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저 사람들은 자기네가 무슨 일을 하는지를 알지 못합니다.”(눅 23:34) 예수님은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은 자들이 무슨 짓을 했는지조차 모르는데 그들의 용서를 기도했습니다.

 

용서의 출발점

 

진정한 용서의 능력은 우리에게 없습니다. 용서의 능력은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옵니다. 우리를 위한 예수 그리스도의 용서가 서로 용서하는 삶의 출발점입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 5:8)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 우리가 회개도 하기 전에 하나님은 이미 사랑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용서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사랑의 십자가이며 용서의 십자가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님의 십자가 용서의 은혜와 사랑을 믿을 때, 그 믿음에서부터 우리의 용서의 삶은 시작됩니다. 

 

어느 날 베드로가 예수님께 묻습니다. “주님, 내 형제가 나에게 자꾸 죄를 지으면, 내가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까지 하여야 합니까?” 예수님이 대답하십니다. “일곱 번만이 아니라, 일흔 번을 일곱 번이라도 하여야 한다.”(마 18:21-22) 예수님의 용서는 무제한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어서 한 이야기를 들려주십니다. 일만 달란트 빚진 자와 백 데나리온 빚진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용서라는 단어는 실제로 ‘탕감’이라는 단어와 같은 단어입니다. 주기도문에서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 같이 우리의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라는 번역은 “우리에게 빚진 자를 탕감하여 준 것 같이 우리의 빚을 탕감하여 주시고”라고 번역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1만 달란트를 탕감받은 사람입니다. 갚을 길이 전혀 없는 액수였습니다. 탕감만이 살길이었습니다. 성경은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하였습니다.(롬 6:23) 그런데 하나님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하여 우리의 죄를 탕감하여 주시고 새 생명을 주셨습니다. 반면에 우리가 용서해 주어야 할 것은 1백 데나리온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를 불쌍히 여긴 것처럼(용서), 너도 네 동료를 불쌍히 여겼어야(용서) 할 것이 아니냐?” 용서는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해야 할 그리스도인의 삶의 핵심입니다. 우리가 자신이 용서받은 종이라는 것을 깨달을 때, 용서의 삶이 가능합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서로 용서하라고 하시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임을 상기시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은 사랑 받는 거룩한 사람답게 서로 용서하여 주십시오.”(골 3:12-13)

 

권리 포기

 

용서하려면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우리는 십자가의 사랑으로 용서 받았음을 확신할 때 용서의 삶을 결단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용서가 쉽지 않은 것은 용서하려면 우리가 지불해야 할 대가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복수할 권리를 포기하는 것입니다. 용서하라는 명령은 가해자에게 복수하고, 값을 받아내고, 벌을 주고 싶은 우리의 욕구와 정면충돌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자신이 요구할 수 있는 모든 권리를 포기할 때 용서가 가능해집니다. 주님은 우리가 복수가 아닌 자비를 선택하기를 원하십니다. 모든 불의와 거짓과 죄에 대한 형벌은 주님께 맡겨야 합니다. 비록 하나님이 나에게 해를 끼친 그 가해자에게 속이 시원하게 갚거나 고통을 주지 않으신다 해도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오히려 가해자가 더 잘 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상황까지도 주님께 맡겨야 용서할 수 있습니다.

 

용서는 엄청난 대가를 지불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참된 용서를 하려면 깊고 견고한 신앙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믿음이 깊어지고 성숙하는 것은 용서의 열매로 나타나며, 용서하는 삶을 통해 우리의 믿음은 성숙합니다.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의지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일이든 선하게 바꾸시며, 모든 일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십니다. 주님의 말씀대로 우리가 용서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과거의 노예가 되고 말 것입니다. 복수에 집착하는 상처의 포로가 되고 말 것입니다. 용서하지 못할 때 우리는 영원히 과거의 상처와 고통의 감옥에 갇힙니다. 

 

용서가 나를 살린다

 

여기서 우리는 주님이 왜 그토록 힘든 용서를 명령하셨는지 알 수 있습니다. 용서는 바로 나를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용서할 때 용서하는 그 사람이 살아납니다. 회복됩니다. 치유됩니다. 건강해집니다. 용서하지 않으면 우리는 과거에 매인 인생이 되고 맙니다. 용서는 나를 위한 것이며, 나를 사랑하는 것이며, 나를 살리는 것입니다. 용서하는 순간 나를 얽어매었던 미움과 원한과 불안과 고통은 떠나갑니다. 우리는 진정한 자유와 행복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용서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감당해야 하는 것은 있습니다. 1) 우리가 용서한다고 해도 그것이 죄에 대한 책임을 면제하는 것은 아닙니다. 내가 용서 받았을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죄를 지은 사람은 용서를 받았어도 마땅히 책임을 져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용서받은 것은 실은 공짜가 아닙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죄의 대가를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죄의 값을 치르셨습니다. 2) 용서해도 아픔과 상처의 흔적은 남아 있습니다. 물론 이것도 성령님의 만지심으로 치유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용서할 때 더 이상 과거가 나를 지배하지는 못한다는 것입니다. 

 

용서의 삶으로

 

하나님의 사랑이 예수님이 죗값을 치름으로 우리를 용서하심으로 확증되었듯이 용서는 서로 사랑하는 삶의 최고봉입니다. 용서에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내가 용서하기로 결단하는 것입니다. 복수가 아니라 용서를 선택하는 것입니다. 저주가 아니라 축복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응징이 아니라 긍휼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사랑입니까?

 

이 시간 용서의 문제로 씨름하고 계신 분이 있는 분이 계시다면, 그 자리에 주님을 초대하십시오. 주님께 그 모든 것을 보여드리십시오. 그리고 주님을 신뢰하고 의지하십시오. 주님의 사랑과 용서를 생각하십시오. 용서를 선택하는 것은 참으로 용기 있는 멋진 행동입니다. 용서가 우리를 살릴 것입니다. 밝고 아름다운 기쁨과 소망의 길을 열어줄 것입니다. 용서는 사랑의 완성입니다.

 

 

4. 다듬으심

1) 주일 예배를 통해 경험하고 감동받거나 느낀 것은 무엇인가요?

2) 누군가를 용서하고 또는 용서받음으로 진정한 자유와 행복을 경험한 적이 있다면 나눠주세요.

3) 내가 용서해야할 대상 또는 내가 용서를 구하는 대상이 있나요? 함께 나눠봅시다.

4) 앞으로 한 주간 삶 속에서 말씀을 어떻게 적용할지 구체적으로 한 가지만 나눕니다.

 

5. 들어쓰심 

1)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기 위한 결단과 헌신의 기도하기

2) VIP(전도대상자), 개인, 가정, 교회, 선교, 나라를 위한 합심, 중보기도

 

6. ◾ 가 정 : 말씀나눔 ◾ 소그룹 : 말씀나눔/ 소식나눔/ 헌금찬송 259장/ 주기도문

 

7. 금주의 암송구절 : 금주의 암송구절을 함께 외웁니다.

 ◾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사도행전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