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402 동수교회 2부 예배 실황 영상 "믿음의 순례길, 나귀를 타세요"

작성 동수교회
날짜 2023-04-01
설교한 날
2023/04/02 일
성경 본문
마태복음 21:1-11
설교
주학선 목사

<온라인 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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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순례길, 나귀를 타세요 (마태복음 21:1-11)

 

 

1. 환영과 찬양
    ◾ 기쁨으로 서로 환영하며 축복합니다. 잠시 교제의 시간을 가집니다. 
    ◾ 찬송  141장      ◾ 복음송  호산나      ◾ 기도 맡은 이 혹은 합심기도

 

2. 먼저오심 
    1) 지난 한 주간의 이야기(행복, 고마움, 힘듦)를 서로 나눕니다.
    2) 지난 한 주간 어떤 기도를 했는지 서로 이야기합니다.

 

3. 만나주심 
    ◾ 성경본문 : 마태복음 21:1-11

 

이 사람이 누구냐?

드디어 예수님이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가십니다. 이때는 예루살렘을 순례하기 위하여 방방곡곡의 유대인들이 모여드는 유월절을 앞둔 시기였습니다. 예루살렘 성이 바로 앞에 보이는 감람산 벳바게에 이르자, 예수님은 입성 준비를 하시면서 두 제자를 보내어 나귀 새끼를 끌어오게 합니다. 마태는 이 모든 것이 예언의 말씀을 이루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하면서 이사야서(62:11)와 스가랴서(9:9)의 말씀을 직접 인용합니다.”(5절) 제자들은 나귀와 나귀 새끼를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나귀 위에 안장처럼 얹었고 예수님은 나귀를 타셨습니다. 사람들은 수려한 종려나무 잎을 흔들거나 길에 깔아 예수님을 환호했습니다. “종려주일”이라는 이름은 이렇게 종려나무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예수님을 환호하는 사람들은 한 무리의 순례단이 되어 예루살렘으로 입성하며 즐겁게 퍼레이드를 벌입니다. 시편에는 “성전으로 올라가는 순례자의 노래”(시 120-134)가 있습니다. 바로 예루살렘을 보고 올라가면서 부른 노래입니다. 예수님을 앞서거나 뒤따르는 무리가 소리 높여 외칩니다.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9절) 이는 시편 118:19-29의 구절인데 왕이나 순례자들이 예루살렘에 입성하면서 부른 노래였습니다. 이렇게 환호하는 중에 예수님이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가시니 온 성이 들떠서 묻습니다. “이 사람이 누구냐?”

 

작정하시고 예루살렘으로

예수님은 이렇게 작정하시고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셨습니다. 지금까지 예수님의 복음 사역의 주된 활동 무대는 갈릴리 지역이었습니다. 마태, 마가, 누가의 복음서에서는 예수님의 어린 시절 외에는 복음 사역을 시작하신 이후 예루살렘 성안으로 들어가셨다는 기록이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은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에 관한 첫 기록이 되는 셈입니다. 공관복음서에서 예루살렘은 매우 중요한 의미가 담긴 곳입니다. ‘예루살렘’이 언급될 때는 언제나 예수님이 고난을 받으시고 별세하실 곳으로 예언되었습니다.(마 16:21, 20:18)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은 곧 예수님이 고난을 받고 별세의 길로 들어가심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말씀은 “예루살렘으로 가까이” 가셨다는 말씀으로 시작됩니다. 마침내 예수님은 고난과 죽음이 기다리는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십니다. 

 

사명을 위하여

예수님은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시간에 맞추어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선언하셨습니다.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눅 19:10) 이것이 예수님의 사명 선언문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을 분명히 아시고 그 길을 향하여 직진하셨습니다. 언제 어디에서 사역하시던 예수님의 중심에는 예루살렘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사명은 구원과 하나님의 나라였고, 십자가가 없이는 이룰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음이 기다리는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셨습니다. 예수님은 지금까지 제자들에게 예수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계속 예고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저항에 부딪혔습니다.(마 16:21-22, 17:20-24) 어느 사람도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지만, 예수님은 예고하신 대로 사명을 이루기 위하여 다른 길로 피하지 않고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셨습니다. 

 

사명이 인생의 방향을 결정합니다. 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는지 물어보아야 합니다. 내 인생이 가는 방향이 바른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것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사명을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 우리는 바쁘고 치열한 삶에 묻혀 자신의 사명을 잊고 살기 쉽습니다. 단지 열심히 살고 열심히 뛰는 것만으로 잘사는 삶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사는지 항상 자기 삶의 방향을 확인하고 살아야 합니다. 우리의 사명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가야 할 길은 무엇입니까? 우리의 사명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이어지는 마태복음 22장에서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마 22:37-40)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마지막 만찬을 나누시고 제자들의 발을 씻으신 후에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 13:34) 이것이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사명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고 구원하시려고 십자가가 기다리는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셨습니다. 우리가 사명을 위해 살 때 기쁨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고난과 어려움도 있습니다. 아픔도 있고 상처도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길이 “좁은 문”(마 7:13)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길이 생명의 길이고 평화의 길이고 복의 길임을 믿기에 사명을 향한 우리의 행진이 멈추어서는 안 됩니다.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시는 예수님처럼 우리의 삶의 방향을 놓치지 말고 담대히 나아갑시다. 사랑하기를 멈추지 맙시다. 생명의 순례길을 담대히 걸읍시다.

 

겸손의 왕 

그런데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너무나 평범합니다. 예수님은 나귀 새끼를 타셨습니다. 이 모습은 스가랴 선지자의 예언의 성취입니다.(슥 9:9)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은 왕의 입성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온 세상을 구원하실 메시아의 입성입니다. 그 당시 성으로 들어오는 왕의 행차는 말이나 수레를 타고, 창을 든 호위병의 엄호 가운데 위엄 있는 입성이었습니다. 반면에 예수님은 군림하는 왕의 모습이 전혀 없는 평범한 모습으로 입성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고백했으며(16:16), 그리스도는 영광을 받으실 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이 생각했던 구원자, 메시아의 영광은 적을 물리치고 원수를 무찌르는 승리의 영광이었습니다. 이러한 기대는 “호산나”라는 외침과 “다윗의 자손이여”라는 환호에 담겨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심으로, 그분을 따르던 제자들과 많은 사람의 기대와는 전혀 다른 길을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은 권력과 위엄, 화려함이나 영광과는 어울리지 않는 나귀를 탄 임금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은 온유하고 겸손한 평화의 행진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 왕의 덕목은 온유와 겸손이지 위엄이 아니었습니다. 예수께서는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마 11:29)하다고 말씀하셨으며, 말씀하신 그대로 겸손하게 평화의 왕으로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습니다. 그러나 백성들은 힘으로 정복하며 위엄을 떨치는 왕을 원하였습니다. 그들은 정치적인 메시아를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스라엘의 정치적 왕이 아니라 온 세상과 열방을 구원할 메시아로 오셨습니다. 인간의 근본적인 문제인 죄와 죽음의 권세를 깨뜨리기 위해 오셨습니다. 세상은 능력의 왕을 기대하고 구합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이 주시는 능력은 겸손의 능력, 온유의 능력, 평화의 능력입니다. 주님의 영은 언제나 우리를 겸손과 순종과 온유로 이끄십니다. 

 

바울 사도는 예수님의 성품의 본질인 겸손과 온유하심을 빌립보서 2:5-8에서 찬양합니다. 이 구절은 초대 교회의 가장 아름다운 찬양의 시입니다. 예수님은 참 하나님이셨으나, 자기를 비우셔서 사람이 되시고 종의 모습을 취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낮추시고 십자가에 죽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말을 타고 군림하거나 권력으로 억압하는 길을 버리셨습니다. 오히려 나귀 새끼를 타고 겸손하게 낮아지시고 온유하게 섬김으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이것이 주님의 마음이고 주님의 방식입니다. 예수님은 끝까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실 구세주의 사명을 이루셨으며, 그 사명을 이루는 방식은 온전한 겸손과 자신을 비워 내어 주시는 십자가였습니다. 

 

나귀를 타십시오

예수님의 길이 자신들의 기대와 다름을 알게 된 백성들은 오히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치는 무지한 폭도가 되고 말았습니다. 예루살렘은 겸손한 왕을 거절하였습니다. 제자들조차 예수님을 버렸습니다. 이 모든 것을 아시면서도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십자가의 골고다에 이르기까지 겸손의 걸음을 멈추지 않으셨습니다. 군림하는 왕이 아니라, 자신의 목숨을 내어 주는 겸손과 사랑과 희생의 왕으로 예루살렘에 들어가셨습니다. 이것이 우리를 사랑하시고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방식입니다. 예수님은 사명에 합당한 방식으로 사명을 이루셨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믿고 따르려면 우리의 삶도 예수님의 방식을 닮아야 합니다. 사명을 이루려면 사명에 맞는 길을 따라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사명을 이루기 위해 우리도 겸손과 온유와 순종의 길을 걸어야 합니다. 말을 타면 더 빠르고, 더 강하고, 더 쉽게 전쟁에서 이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사명은 나귀를 타야 이룰 수 있습니다. 사랑과 섬김의 삶은 말에서 내려오는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우리는 말을 탈지 나귀를 탈지 결정해야 합니다. 나귀를 타는 것은 인기가 없습니다. 더딥니다. 알아주지 않습니다. 돈이 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희생해야 하고, 이해해야 하고, 용서해야 하고, 기도하며 인내해야 합니다. 목적이 좋으면 방법은 상관없다는 생각은 위험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사명은 선하고 거룩한 방법으로 이루어야 합니다. 믿음의 순례 여정에서 기꺼이 말이 아니라 나귀를 타십시오. 낮은 길을 걸으십시오.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기쁨과 생명과 평화의 길이 열릴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겸손하게 나귀를 타시고 십자가의 길을 가신 그리스도 예수님을 찬양합시다.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은 우리에게 참 평화를 가져왔습니다. 죄에 빠져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던 우리를 품어 주시고 하나님과 화평한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마음의 종려 가지를 흔들며 예수님을 우리 삶의 중심에 왕으로 모십시다. 호산나를 크게 외쳐 주님께 감사와 영광의 찬양을 드립시다. 주님의 거룩한 인도하심을 따라 고난 주간 깊은 은혜와 겸손의 십자가의 길을 걷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4. 다듬으심
    1) 주일예배를 통해 경험하고 감동 받거나 느낀 것은 무엇인가요?
    2) 성도의 사명인 하나님 사랑, 이웃사랑을 위해 오늘 나는 무엇을 실천할 수 있나요?
    3) 예수님의 방식인 겸손을 따르지 못하게 만드는 가로막는 장애물은 무엇인가요?
    4) 앞으로 한 주간 삶 속에서 말씀을 어떻게 적용할지 구체적으로 한 가지만 나눕니다.

 

5. 들어쓰심 
    1)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기 위한 결단과 헌신의 기도하기
    2) VIP(전도대상자), 개인, 가정, 교회, 선교, 나라를 위한 합심중보기도

 

6. ◾ 가정 : 말씀 나눔     ◾ 소그룹 : 말씀나눔/ 소식나눔/ 헌금찬송 212장/ 주기도문

 

7. 금주의 암송구절: 금주의 암송구절을 함께 외웁니다.
    ◾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 하리라. (잠언 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