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326 동수교회 2부 예배 실황 영상 "우리는 죽어도 삽니다"

작성 동수교회
날짜 2023-03-25
설교한 날
2023/03/26 일
성경 본문
요한복음 11:1-45
설교
주학선 목사

<온라인 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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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죽어도 삽니다(요한복음 11:1-45)

 

1. 환영과 찬양

   ◾ 기쁨으로 서로 환영하며 축복합니다. 잠시 교제의 시간을 가집니다. 
   ◾ 찬송  358장     ◾  복음송  아무 것도 두려워말라
   ◾ 기도  맡은이 혹은 합심기도

 

2. 먼저오심   
   1) 지난 한 주간의 이야기(행복, 고마움, 힘듦)를 서로 나눕니다.
   2) 지난 한 주간 어떤 기도를 했는지 서로 이야기합니다.

 

3. 만나주심  
   ◾ 성경본문 : 요한복음 11:1-45

 

예수님이 복음 사역을 하시면서 특별히 가깝게 지낸 가정이 있습니다. 베나니 마을의 나사로 가정입니다. 나사로는 두 여동생 마르다, 마리아와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베다니는 예루살렘에서 가까운 동네였기에 예수님은 예루살렘과 유대 지역으로 오실 때면 나사로의 집에 머무셨습니다. 나사로의 가정은 예수님을 사랑하고 성심껏 섬겼으며, 예수님도 이 가정을 특별하게 여기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이렇게 사랑하시던 가정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나사로가 중병에 걸렸습니다. 두 자매는 급하게 예수님께 사람을 보냅니다. “주여 보시옵소서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병이다. 이것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아들이 영광을 받게 될 것이다.” 그리고는 계시던 곳에 이틀을 더 머무신 후에야 “유대 지방으로 다시 가자”고 하시면서 “우리 친구 나사로는 잠들었다. 내가 가서, 그를 깨우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이 베다니에 이르시니 마르다가 예수님을 마중 나옵니다. 그런데 그사이 나사로는 죽어 무덤에 장사 된 지 나흘이 되었습니다. 마르다가 말합니다. “주님, 주님이 여기에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을 것입니다.”주님이 말씀합니다. “네 오라버니가 다시 살아날 것이다.” 마르다가 말합니다. “마지막 날 부활 때에 그가 다시 살아나리라는 것은 내가 압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사람은 죽어도 살고, 살아서 나를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아니할 것이다. 네가 이것을 믿느냐?”

 

마르다가 집으로 돌아가서 마리아에게 예수님이 오셨다고 알려줍니다. 그러자 마리아는 아직도 동구 밖에 계신 예수님에게 달려갑니다. 마리아는 울면서 언니와 똑같은 말을 합니다. “주님이 여기에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비통한 심정으로 우십니다. 그리고 나사로를 장사한 무덤으로 가십니다. 무덤은 이미 돌로 막아 놓았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십니다. “돌을 옮겨 놓으라.” 마르다가 말합니다. “주님, 죽은 지가 나흘이나 되어서, 벌써 냄새가 납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되리라고, 내가 네게 말하지 않았느냐?” 돌을 옮겨놓자 예수께서 하늘을 우러러 기도하신후 큰 소리로 명령하십니다. “나사로야, 나오너라.” 예수님의 명령이 떨어지자 죽은 나사로가 무덤에서 나옵니다. 나사로가 살아났습니다. 손발은 천으로 감겨있고, 얼굴을 수건으로 싸매여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를 풀어 주어서 가게 하여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이 행하신 놀라운 기적을 보고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로 향하는 길을 머뭇거리거나 멈추신 적이 단 한 번도 없으십니다. 예수님은 항상 하나님의 시간표를 따라 걸으셨습니다. 나사로가 죽게 되었다는 응급 상황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이틀이나 더 머무셨습니다. 예수님이 머무신 곳은 베다니까지 오려면 아무리 빨리 걸어도 하루 이상 걸리는 (베레아) 지역으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이틀 머무시는 동안 나사로가 죽었습니다. 베다니에 오셨을 때는 이미 죽은 지 나흘이 지났으니까요. 예수님은 어떤 조급한 상황에 따라 행동하지 않으셨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시간과 때를 따라 걸으셨습니다. 그리고 그 시간은 십자가를 향하고 있음을 잘 알고 계셨습니다. 위기와 고난을 만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시간표를 신뢰하고 의지해야 합니다. 믿음 생활 열심히 하고 예수님을 잘 따르는 성도에게도 시련이 찾아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큰 뜻과 선한 인도하심을 신뢰한다면, 기도하고 기다릴 수 있습니다. 나사로 가족은 모두 예수님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비록 “가난한 자의 집”인 베다니에 살았지만, 비록 나사로가 중병에 걸려 죽었지만, 그들을 향한 예수님의 사랑은 변함이 없으셨습니다. 진실한 믿음은 지체되는 응답 속에서도 여전히 주님의 사랑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성공이 아니라 실패의 자리에서, 풍요가 아니라 가난의 자리에서도 여전히 자신을 예수님의 사랑받는 자라고 고백할 수 있는 것이 믿음의 힘이고, 믿음의 행복입니다.

 

예수님은 나사로가 완전히 죽어 살아날 가망조차 없는 시간이 되기를 기다리셨습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뜻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고, 하나님의 아들이 영광을 받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나사로의 죽음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을 통하여 하나님과 아들의 영광이 나타날 것입니다. 예수님은 지금 죽음의 어둠 가운데 있는 “친구 나사로”를 깨우러 가십니다. 그런데 베다니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죽은 지 이미 나흘이 되었습니다. 죽은 지 이미 나흘이라는 것은 영혼이 돌아오고 살아날 가망이 전혀 없다는 뜻입니다.

 

나사로가 무덤에 묻힌 그 “나흘”은 절망을 말합니다. “나흘”은 아무것도 할 수 없고 기대할 수 없는 죽음의 상태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절망의 시간에 찾아오셨습니다. 이때 필요한 것이 믿음입니다. “이미 나흘”인 때에 필요한 것이 믿음입니다. 모든 가능성이 차단된 자리에서 주께서 하실 일을 바라보는 것이 믿음입니다. 주님은 “나흘”의 절망과 한계에 갇힌 우리를 구하러 찾아오셨습니다. 주님은 사람의 기대가 끝난 자리에서 새 일을 시작하십니다. 예수님은 나사로가 살아나리라고 말씀하시지만, 마르다는 지금이 아니라 종말에 일어날 부활을 믿는다고 고백합니다. 바로 자기 앞에 서 계신 예수님이 부활이며 생명이심은 모릅니다. 부활은 믿는 이들에게 종말의 때에 주어질 보상이 아니라, 오늘 이 땅, 이 자리에서 누리는 영원한 생명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 예수께서 부활과 생명을 주시는 때는 장차 어느 미래가 아니라 바로 지금 이 순간이라는 선언입니다. 예수님은 부활이요 생명이십니다. 예수님은 마르다에게 지금 여기에 존재하시는 부활을 보라고 하십니다. 부활은 교리나 관념이 아니라 생명이며 삶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부활을 아는 지식이 아니라 예수님 안에서 경험하는 부활의 능력입니다. 요한복음이 말하는 죽음은 단지 목숨이 끊어진 상태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진 것입니다. 반면에 생명은 하나님과 바르고 친밀한 사랑의 관계를 맺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목숨이 끊어지더라도 하나님과 끊어진 것은 아닙니다. 믿는 자의 부활의 삶은 지금 하나님과 생명의 관계를 누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영원히 그리스도의 생명을 지니고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 다시 오실 때에 거룩한 몸을 입고 하나님과의 생명의 관계를 영원히 누리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나사로를 살리심으로 부활의 영생을 믿게 하시고(15, 42절), 부활의 능력과 영광을 예고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는 성도는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세상에서 부활의 능력으로 승리합니다. 부활의 믿음을 가진 사람은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생명의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계십니다. 예수를 죽음에서 살리신 하나님의 영이 우리에게 승리를 주십니다. 죽음을 넘어서게 하십니다. 참 평화와 영원한 생명을 살게 하십니다. 구약에서 가장 신비롭고 놀라운 이야기 중의 하나가 골짜기의 마른 뼈가 살아나는 에스겔의 환상입니다.(겔 37:1~14) 에스겔은 하나님의 영의 인도함을 받아 어떤 골짜기 안에 들어서는데, 그곳에서 골짜기에 가득한 뼈들을 보게 됩니다. 그 골짜기는 끔찍한 전쟁이 일어났던 곳입니다. 그곳의 뼈들은 전쟁에서 죽어간 군사들의 유해입니다. 바벨론에 의해 죽임을 당한 유다의 군사들과 예루살렘에서 쫓겨나 영적으로 메말라 버린 유다 포로민들의 소망 없는 모습을 상징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뼈들이 이스라엘 온 족속이며 그 뼈들에게 설교하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이 마른 뼈들을 소생시켜 하나님의 군대로 삼으려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에스겔이 마른 뼈들에게 말씀을 외치자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완전히 사람의 몸이 되살아났습니다. 그러나 숨은 쉬지 못합니다. 에스겔이 다시 외칩니다. “너 생기야, 사방에서부터 불어와서 이 살해당한 사람들에게 불어서 그들이 살아나게 하여라.”(겔 37:9) 그러자 숨이 들어가 살아났는데 엄청난 군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생기를 불어 넣어주실 때 생명을 회복하였습니다. 에스겔의 환상은 생명을 주시고 살리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줍니다. 선지자의 말씀이 선포되고 하나님의 영(숨)을 불어 넣어주실 때 살아났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살립니다. 우리가 생명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며, 믿음으로 받아 순종할 때 우리의 인생이 살아납니다. 우리의 영이 새로워집니다. 영원한 생명과 부활의 능력을 누릴 수 있습니다. 말씀이 선포되고, 주님의 영이 있는 곳에 생명이 살아납니다. 마른 뼈와 같은 곳에 주님의 말씀이 흘러가고, 주님의 영이 임할 때 우리 인생은 살아납니다. 우리 교회는 살아납니다. 우리의 가정과 일터가 살아납니다. 

 

예수님이 “나사로야 나오라!”고 말씀하실 때 나사로가 살아났습니다. “나오라”는 단어에는 “따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나사로에게 따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제 나사로는 생명의 삶을 살면서 예수님의 제자가 되라는 부르심입니다. 죽음의 절망에 내몰린 이들에게 필요한 진정한 위로는 부활의 복음입니다. 예수님은 무덤에서 살아 나온 나사로를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고 하셨습니다.(44절) 이것이 제자의 일입니다. 이것이 교회의 일입니다. 마태복음에서는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마 18:18)고 말씀하셨습니다. 생명의 주님이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풀어야 합니다. 묶인 것을 풀어야 합니다. 자신의 삶과 내면에서, 가정에서, 일터에서 묶인 것이 무엇입니까? 무덤의 돌문처럼 막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두려워마십시오. 절망하지 마십시오. 그리스도의 부활의 능력과 생명의 영으로 인생을 가로막은 돌을 옮기고 묶인 것을 풀어내며, 평화와 소망과 기쁨 가득한 생명의 삶, 살아나는 인생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기억하십시오. 감사하십시오. 우리는 죽어도 삽니다. 우리는 영원히 삽니다. 

 

 

4. 다듬으심 
   1) 주일 예배를 통해 경험하고 감동받거나 느낀 것은 무엇인가요?
   2) 하나님의 큰 뜻과 선하신 계획을 기다린 적이 있나요?
   3) 내 안에 묶인 것은 무엇인가요? 자유롭게 나눠봅시다.
   4) 앞으로 한 주간 삶 속에서 말씀을 어떻게 적용할지 구체적으로 한 가지만 나눕니다.

 

5. 들어쓰심 
   1)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기 위한 결단과 헌신의 기도하기
   2) VIP(전도대상자), 개인, 가정, 교회, 선교, 나라를 위한 합심중보기도

 

6. ◾ 가정 : 말씀나눔   ◾ 소그룹 : 말씀나눔/ 소식나눔/ 헌금찬송 337장/ 주기도문

 

7. 금주의 암송구절 : 금주의 암송구절을 함께 외웁니다.
    ◾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잠언 1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