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환영과 찬양
◾ 기쁨으로 서로 환영하며 축복합니다. 잠시 교제의 시간을 가집니다.
◾ 찬송 85장 ◾ 복음송 내 마음에 주를 향한 사랑이
◾ 기도 맡은 이 혹은 합심기도
2. 먼저오심
1) 지난 한 주간의 이야기(행복, 고마움, 힘듦)를 서로 나눕니다.
2) 지난 한 주간 어떤 기도를 했는지 서로 이야기합니다.
3. 만나주심
◾ 성경본문 : 마가복음 8:27-38
예수님은 왜 “자기의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30절)고 경고하셨을까요? 사실 마가복음에서 예수님은 종종 자신을 나타내거나 알리지 말라고 함구령을 내리셨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함구령을 내리시면서도 스스로 함구령을 깨뜨리십니다. 마침내 “드러내놓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예수님이 누구신지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예수님을 따르기를 원치 않으셨습니다. 겉으로 드러난 기적만 보고 예수님을 따르기를 원치 않으셨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참 모습은 무엇일까요? 바로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입니다. 예수님이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사흘 만에 살아나실 것”을 말씀하신 후에 비로소 자신을 드러내신 이유입니다. 예수님은 비로소 고난과 죽음을 말씀하시면서 자신을 드러내셨습니다. 오늘 본문을 정점으로 예수님은 십자가를 향해 직진하십니다. 이렇게 결정적이고 중요한 시점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큰 질문을 던지십니다.
사람들은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지금까지 제자들은 예수님을 따르면서 엄청난 일들을 목격하고 경험했습니다. 권위 있고 신비로운 진리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병을 고치시는 이적도 보았습니다. 귀신을 내어 쫓는 권능도 보았습니다. 바다 위를 걸으시는 초자연적인 능력도 보았습니다. 심지어 물고기 두 마리와 떡 다섯 덩이로 오천 명을 먹이고도 남게 하시는 최고의 기적도 보았습니다. 그런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물으십니다. 사람들은 나를 누구라고 말하느냐? 우리는 예수님이 질문을 던지신 장소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가이사랴 빌립보는 바알을 섬기는 바알 신앙의 발생지였으며 예수님 당시에는 거대한 바알 신당이 그곳에 있었습니다. 바알은 풍요의 신이며 가나안 지역의 우두머리 신입니다. 예수님은 바알의 본고장 빌립보에 이르셨을 때 질문을 던지셨습니다. 많은 무리가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누구신지 제대로 알고 따랐을까요? 바알은 오직 풍요만을 약속하는 신이었습니다. 사랑과 정의와 도덕과는 상관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병을 고치며, 온갖 기적을 행하실 때마다 사람들은 예수님이 단지 자신들의 필요와 풍요만을 주시는 분으로 믿고 따랐던 것은 아닐까요?
예수님께서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느냐?”고 물으시자 제자들은 대답합니다. “세례 요한이라 하고 더러는 엘리야, 더러는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28절) 그들은 예수님의 참된 모습에 대해, 예수님의 본질에 대해서는 말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생각은 곧 세상의 가치와 생각입니다. 세상은 바알 신앙에 물들어 있습니다. 물질의 풍요, 육체의 정욕과 즐거움, 이생의 자랑이 목표요 행복입니다. 우리는 세상을 따르기 쉽습니다. 세상은 우리의 일상과 삶의 터전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자칫 예수님을 단지 물질적이며 육체적인 풍요와 만족을 채워주시는 기복신앙에 빠지기 쉽습니다. 우리의 성공과 기쁨과 행복의 기준이 세상과 같아지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물으십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예수님은 제자들이 자기 자신을 돌아보게 하십니다. 베드로가 대답합니다. “주님은 그리스도 시니이다.”(29절) 마태복음에서는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네가 복이 있도다”라고 말씀하시면서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마 16:17)고 말씀하셨습니다. 진리를 깨닫는 것, 그것은 지식을 얻는 것과는 다릅니다. 지식은 보고 듣고 읽고 이해함으로 얻습니다. 그러나 진리는 내가 얻는 것이 아니라 오는 것이며 깨달아지는 것입니다. 믿음의 눈은 하나님이 열어주십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과 부활을 믿으며, 예수님이 살아계셔서 역사하시며 우리와 함께하심을 믿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마가복음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막 1:1)는 선언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마가복음은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증언하려고 기록되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님에게서 빵을 얻으러 왔고, 어떤 사람은 기적을 보러 왔고, 어떤 사람은 건강을 위해서 왔지만, 베드로는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시기에 따랐습니다. 예수님을 나의 주요 그리스도로 깨닫고 고백하는 것은 우리의 신앙생활의 핵심입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라는 주님의 핵심 질문에 대한 자신의 대답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에 대한 자신의 고백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을 따르는 이유와 목적이 무엇입니까? 이 시간 우리가 이곳에 모여 주님을 예배하는 것은 예수님만이 나의 참 생명이 되시며 그분이 나의 그리스도가 되심을 믿고 고백하기에 모인 것이 아닙니까? 이 시간 성령님께 우리와 함께하시고, 우리를 감동하셔서 예수님이 나의 주님이시며 그리스도이심을 확신하고 고백하는 은혜가 넘치기를 축복합니다.
마태복음과는 달리 예수님은 베드로의 고백 후에 아무에게도 예수님이 그리스도시라는 진리를 말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리고는 자신이 버림을 당하시고, 죽임을 당하실 것이며, 사흘 만에 살아나리라고 비로소 말씀하십니다. 그 후에야 예수님은 자신을 드러내십니다. 고난 없는 그리스도, 죽음 없는 그리스도, 부활이 없는 그리스도는 거짓 그리스도입니다. 세상은 고난을 당하고 죽는 그리스도를 알지 못했습니다. 심지어 베드로조차 그런 그리스도를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자마자 예수님을 붙들고 항변하였습니다.(32절)
‘예수님이 그리스도시다’라는 고백은 정답이었습니다. 하지만 베드로가 생각하고 있는 그리스도는 정답이 아닙니다. 베드로는 비록 예수님이 그리스도라고 고백했지만, 그는 그리스도가 죽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아직 그리스도가 어떤 분인지, 그리스도의 본질을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그리스도가 되심을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사람의 일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다고 고백하고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고백하며 열심히 교회에 다니지만, 우리는 어떤 그리스도를 믿고 있습니까? 혹시 우리는 자신에게 필요하고, 자신이 원하는 그리스도를 만들고 예수님을 그 틀에 맞추려고 하지는 않나요?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지만, 자기의 그리스도, 자신이 만든 그리스도를 고백한다면 온전한 믿음이 될 수 없습니다. 이런 사람은 그리스도를 말하면서 하나님의 나라가 아닌 인간의 왕국을 세웁니다. 거짓과 이단이 여기서 나옵니다. 그러기에 주님은 베드로를 꾸짖으시고 사탄이라고 책망하셨습니다.
너는 나를 따르겠느냐?
예수님은 베드로와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막 8:34) 그리스도를 따른다는 것은, 그리스도를 닮아간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는 고난을 겪고 죽을 것인데, 너도 그 길을 걷겠느냐는 물음입니다. 네가 그리스도를 따르려면 너도 그리스도처럼 죽어야 하는데, 너도 네가 죽은 십자가를 지고 따를 수 있겠느냐고 물으십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길은 가볍지 않습니다. 쉽지 않습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막 8:35)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사람은, 예수님을 삶의 주님으로 모십니다. 그리고 그분과 함께 일생을 살아갑니다. 주님처럼 살아갑니다. 주님을 닮아갑니다. 주님은 자기 목숨을 주님과 복음을 위해 내어놓으라고 하십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라고 하십니다. 고난과 십자가의 길을 주님과 함께 걸어가자고 하십니다. 주님을 따르는 일은 목숨을 내놓은 일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믿음의 신비가 있습니다. 주님과 복음을 위해 자기 목숨을 잃으면 구원한다고 하십니다. 십자가를 지는 것이 생명을 얻는 길이라고 하십니다. 주님을 따르려면 주님과 함께 자기 십자가를 져야 한다고 하십니다. 십자가를 질 때 부활의 생명을 누린다고 하십니다. 주님은 주님을 따르는 길을 포장하거나 감추지 않으셨습니다. 모두 드러내셨습니다. 그리고 물으십니다. 너는 나를 따르겠느냐?
쉽게 대답할 수 없는 물음입니다. 대답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정직한 마음이 필요합니다. 용기와 결단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압니다. 비록 베드로가 처음엔 그리스도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인간의 일로 생각했지만, 그는 자신의 십자가를 졌고 그리스도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 목숨까지 내놓았습니다. 우리에게도 희망이 있습니다. 부활의 주님이 우리 안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살아계심을 믿고 신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궁극적으로 성도의 삶은 우리 자신이 아니라 우리 안에 살아계신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삶입니다. 그리고 그분의 부르심과 음성에 기꺼이 순종하는 삶입니다. 너는 나를 따르겠느냐?
4. 다듬으심
1) 주일 예배를 통해 경험하고 감동받거나 느낀 것은 무엇인가요?
2) 예수님을 따르는 이유와 목적은 무엇입니까? 자유롭게 나눠봅시다.
3) ‘너는 나를 따르겠느냐’라는 주님의 물음에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요?
4) 앞으로 한 주간 삶 속에서 말씀을 어떻게 적용할지 구체적으로 한 가지만 나눕니다.
5. 들어쓰심
1)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기 위한 결단과 헌신의 기도하기
2) VIP(전도대상자), 개인, 가정, 교회, 선교, 나라를 위한 합심중보기도
6. ◾ 가정 : 말씀 나눔 ◾ 소그룹 : 말씀나눔/ 소식나눔/ 헌금찬송 430장/ 주기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