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환영과 찬양
◾ 기쁨으로 서로 환영하며 축복합니다. 잠시 교제의 시간을 가집니다.
◾ 찬송 302장 ◾ 복음송 오직 예수 뿐이네
◾ 기도 맡은이 혹은 합심기도
2. 먼저오심
1) 지난 한 주간의 이야기(행복, 고마움, 힘듦)를 서로 나눕니다.
2) 지난 한 주간 어떤 기도를 했는지 서로 이야기합니다.
3. 만나주심
◾ 성경본문 : 누가복음 16:19-31
바리새인에 대한 성경의 평가는, 긍정적이지 않습니다. 신망과 존경의 대상이라기보다는, 비판받아야 하고, 질책받아야 하는 대상으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왜 그들이 그렇게 변질된 상황으로 가게 되었을까요? 그 이유를 잘 설명하는 말씀 가운데 하나가, 바로 오늘 우리가 함께 본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비유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이 비유를 하신 것은, 바로 바리새인들을 향한 것이었습니다(14절). 그렇다면, 예수님은 이 비유를 통해 바리새인들에게 어떠한 말씀을 하시려고 한 것일까요?
부자와 거지 나사로 비유 – 바리새인을 향한 말씀
한 부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당시 상위 1%만이 입을 수 있었던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또 대문이 딸린 큰 집에서 살았습니다. 늘 즐겁고 호화로운 삶을 살아갔습니다. 그리고 또 한 명의 인물이 나타나는데, 바로 그 부자의 집 대문 앞에서 노숙하였던 거지 나사로라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옷도 집도 먹을 것도 전혀 없는, 먹을 것이라고는 부자가 먹고 떨어뜨린 부스러기 정도밖에 없는 아주 빈궁한 삶을 살았던 사람이었습니다.
이렇게 대조된 삶을 살았던 두 사람이, 이제 생을 다하여,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죽음을 맞이한 그들에게 반전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바로 거지 나사로는,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으로 가게 되고, 부자는 음부에서 고통 가운데 지내게 됩니다. 이 땅에서의 삶과 전혀 반대되는 모습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이것을 아주 극명하게 잘 나타내는 표현이, 부자의 요청 가운데 나타납니다(24절). 불 속에서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던 부자가 아브라함에게, 나사로를 보내서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해 달라고 요청합니다. 이 손가락 끝의 물과 대구를 이루는 것이 있는데요, 그것은 바로 살아생전에 거지 나사로가 먹었던 부자가 먹다 남긴 음식 부스러기입니다. 둘 다 아주 작은 양입니다. 그런데 그 작은 양에 대한 대상이 바뀝니다. 바로 거지 나사로에서 부자로 바뀌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완전히 바뀌게 된 상황 속에서, 부자가 한 가지를 더 요청합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의 친족들을 향해, 죽음 이후 어떻게 되는지를, 나사로를 부활시켜 증언해 달라는 요청이었습니다. 자신이 겪고 있는 이 고통을, 자신의 친족들은 겪게 하고 싶지 않는 마음에서, 이러한 요청을 하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이를 거절합니다. ‘그들에게는 모세와 예언자들이 있으니, 그들의 말을 들어야 한다. 그들이 모세와 예언자들의 말을 듣지 않는다면,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누가 살아난다고 해도, 그들은 믿지 않을 것이다.’(29,31절) 즉, 말씀을 통해 그들이 깨달아야 함을 이야기합니다. 말씀을 듣지 않는다면, 그 어떤 기적이라도 그들에게 소용없을 것임을 말씀합니다.
은혜를 잊어버리다, 자기 의를 찾아 나서는 삶
예수님이 말씀은, 당시 유대인들의 사고 속에 있었던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복에 대한 개념과 연관됩니다. 당시 복은 겉으로 드러나는 것들을 기준으로 삼았습니다. 몸이 건강해야 합니다. 자녀들이 많아야 합니다. 재정적으로 풍성해야 합니다. 이것이 당시의 복의 기준이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은 사람이고, 의로운 자가 되었음을 뜻하였습니다. 이러한 당시의 사고로 본다면, 오늘 말씀에 나온 부자와 거지 나사로 중 누가 진짜 하늘나라에 들어가야 할 바로 부자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기준에서 부자는 하나님께로부터 복을 받은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거지 나사로는 그들의 기준에서는 받은 복이 없었습니다. 그러니 그 음부에 들어가야 할 자는, 바로 이 거지 나사로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비유에서 예수님은 그들의 사고와는 정반대의 결과를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이 그들이 가지고 있는 그 사고를 완전히 깨뜨려버리시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예수님이 이 비유를 통해서 하시고자 한 말씀은, 세상에서 받은 부귀영화가 결코 구원의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아님을 말씀하시려 했던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이 자신의 의로움을 증명하고자 그렇게 추구하였던 것들이, 실상은 다 거짓에 불과하다는 것을, 이 비유를 통해서 나타내려 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무엇이 진정한 구원으로 이끌어가는지를 말씀합니다. 바로 거지였던 그 나사로의 이름입니다. 부자는 이름이 없습니다. 그런데 거지는 나사로라는 분명한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이름을 굳이 이야기한 것은, 예수님이 이야기하고 싶었던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사로’는 ‘하나님이 도우신다.’ ‘하나님이 나의 도움이시다.’라는 뜻입니다. 즉, 예수님은 우리의 구원이 하나님께 달려 있다는 것을 말씀하시고자 한 것입니다. 바리새인들과 같이 세상에서 그 무엇을 이루는 것이, 결코 구원을 이루는 것이 아님을, 이 비유를 통해 말씀하시고자 하신 것입니다.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무엇이 우리의 구원을 이루는 길인지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순전한 하나님의 은혜이며, 하나님이 베푸신 은총에 의한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 안에 거하지 않는다면, 결단코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때때로 그 받은 은혜를 잊어버리며 살아갈 때가 있습니다. 우리의 죄 된 습성으로 인하여 은혜보다는, 세상의 그 무언가를 집착하며, 그래서 바리새인들처럼 ‘내’가 무언가를 이루려는, ‘내’ 의를 드러내는 것에 초점을 맞추며 살아갈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를 늘 주의하며 경계해야 합니다.
은혜를 잊어버린 자 – 이웃을 돌아보지 못한 삶
자기 의에 빠진 사람이 어떠한 삶의 모습을 보이는지 말씀해줍니다. 먼저 이웃을 돌아보는 삶이 되지 못합니다. 거지 나사로가 이 땅에서 살아갈 때, 그의 자리가 부자가 사는 집 대문 앞에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비유에서 부자는 나사로에게 어떠한 반응도 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부자에게 있어 삶의 우선이, 세상의 그 무엇이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삶의 우선이었기에, 그의 가까운 곳에 항상 있었던 나사로의 그 아픔과 고통과 괴로움을 전혀 볼 수 없었던 것입니다.
만약 부자에게 있어서 은혜가 우선되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아마도 그 은혜로 인해, 그의 눈이 주변을 향해 밝혀져 있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은혜는 우리 자신을 변화시켜 나가기 때문입니다. 은혜는 협소한 나의 마음을 넓게 해줍니다. 은혜는 나의 닫혀 있는 마음을 열어줍니다. 이러한 은혜로 변화된 사람을 하나 꼽으라고 한다면, 바울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는 기독교인들을 박해하는 일에 몰두해 있었습니다. 하지만, 주님을 만나고 은혜를 경험하게 되었을 때, 그는 이방인들을 향한 사도로 변화됩니다. 엄격한 율법주의자에서 이방인까지 포용하는 사랑의 사도로 변화된 것입니다. 바울은 이런 자신에 대해 고백합니다. “나는 하나님의 은혜로 오늘의 내가 되었습니다. 나에게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는 헛되지 않았습니다.”(고전 15:10)
은혜를 받은 자들은 주변을 보게 됩니다. 지금 여러분들은 주변을 보고 있습니까? 사랑의 마음으로, 포용의 마음으로, 용서의 마음으로, 이웃의 아픔에 공감하며, 손잡아 주며, 섬기는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까?(로마서 12:15) 은혜받은 자로서 은혜 안에 거하며 은혜의 눈을 가지고 이웃을 바라보는 성도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은혜를 잊어버린 자 – 말씀을 듣지 못한 삶
두 번째는 말씀을 듣는 삶이 되지 못합니다. 오늘 말씀에 부자는 자기의 친족들이 자신과 같은 잘못을 범하지 않기 위해, 나사로를 보내주어서 그들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전달해 줄 것을 요청합니다. 그때 아브라함이 ‘모세와 예언자’ 즉, 말씀이 그들 가운데 있음을 이야기합니다. 아무리 놀라운 기적을 펼쳐 보인다 해도, 말씀을 듣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부자와 그의 친족들은 이미 그 말씀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렇게 그들이 말씀을 알고는 있었지만, 그 말씀을 듣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주님의 은혜 안에 거하는 자는 말씀을 듣는 자들입니다. 은혜가 말씀에서 비롯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말씀을 통해 삼위의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케 하고자 일하시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 형언할 수 없이 높고 넓은 사랑의 크기를, 말씀을 통해 보게 되었습니다. 결국 말씀이 우리가 은혜를 받는, 은혜 안에 거하게 되는 근거가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듣지 않으면 결코 그 은혜를 누릴 수 없습니다. 우리도 은혜 안에 거하기 위해서 바로 이 말씀을 듣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눅 11:28).
은혜의 강물에 잠기어
오늘 이 비유는 결국 은혜를 잊어버리고 사는 바리새인들에 대한 질책의 말씀이었습니다. 그들은 은혜보다는 그것을 대신할, 자신의 의로움을 증명할 무언가를 찾으며 살아갔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그들을 향해 그 길이 잘못된 길임을, 진정한 구원의 길이 아님을 말씀하십니다. 진정으로 구원으로 이끌어가는 길은, 자신을 증명할 그 무언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의 은혜에 달려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바로 그 은혜를 의지하는 삶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은혜 안에 거하는 성도가 됩시다. 은혜의 그 강물 안에 깊이 잠겨 살아가는 성도가 됩시다. 주님의 은혜가 우리를 구원하며, 주님의 도우심이 우리를 선한 길로 인도해 갈 것입니다. 혹시 현재의 삶이 나사로와 같은 삶을 살아가고 계신 분이 있으십니까? 절망하지 말고 좌절하지 맙시다. 삶이 어렵고 힘겹지만, 우리는 나사로입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입은 자들, 하나님의 손길이 함께 하는 자들,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들입니다(베드로전서 5:12). 우리 가운데 임한 그 은혜를 기억하며, 늘 은혜의 강물에 잠기어 살아가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4. 다듬으심
1) 주일 예배를 통해 경험하고 감동받거나 느낀 것은 무엇인가요?
2) 받은 은혜를 잊고 살아간 경험을 함께 나눠봅시다.
3)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자유롭게 나눠봅시다.
4) 앞으로 한 주간 삶 속에서 말씀을 어떻게 적용할지 구체적으로 한 가지만 나눕니다.
5. 들어쓰심
1)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기 위한 결단과 헌신의 기도하기
2) VIP(전도대상자), 개인, 가정, 교회, 선교, 나라를 위한 합심중보기도
6. ◾ 가정 : 말씀나눔 ◾ 소그룹 : 말씀나눔/ 소식나눔/ 헌금찬송 197장/ 주기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