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321 동수교회 3부 예배 실황 영상 "잃어버린 자”

작성 동수교회
날짜 2021-03-21
설교한 날
2021/03/21 일
성경 본문
누가복음 19:1-10
설교
전종배 목사

<온라인 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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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의 복음이야기(11) 잃어버린 자 - 누가복음 19:1-10

 

1. 환영과 찬양 

   ■ 기쁨으로 서로 환영하며 축복합니다. 잠시 교제의 시간을 가집니다. 

   ■ 찬송 43장   ■ 복음송 나 주님의 기쁨되기 원하네   ■ 기도 맡은이 혹은 합심기도

 

2. 먼저오심 

   1) 지난 한 주간의 이야기(행복, 고마움, 힘듦)를 서로 나눕니다.

   2) 지난 한 주간 어떤 기도를 했는지 서로 이야기합니다.

 

3. 만나주심 

   ■ 성경본문: 누가복음 19:1-10

 

1만 년이라는 엄청난 역사를 가진 풍요의 도시, 광야의 오아시스면서 아름다운 요단강이 흐르는 종려나무 성읍, 여리고에 삭개오라는 인물이 살았습니다. 삭개오의 이름은 의로운 자, 깨끗한 자라는 의미가 담겨있는 이름이었습니다. 하지만 삭개오는 그 이름에 걸맞은 삶을 살지 못했습니다. 그의 직업이 세리장이었기 때문입니다. 

세금을 걷는 세리장 삭개오가 사람들에게 정해진 것 이상의 세금을 거둬들였는지, 거둬들였다면 얼마나 거둬들였는지, 우리는 알 수 없지만, 당시 유대인들은 세금 징수원인 세리에게 아주 적대적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세리들은 로마의 앞잡이가 되어서 동족인 유대인들의 돈을 착취했고, 그 돈을 로마에 세금으로 헌납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로마에서 파견된 총독이 하는 주요한 일 중의 하나가 세금을 징수하는 거였는데, 총독이 이 세금을 직접 거두러 다녔느냐? 그렇진 않습니다. 지역의 실정을 잘 아는 주민이 세금 징수에 대한 계약을 맺었습니다. 그 지역의 주민들이 얼마의 세금을 내야 할지를 파악하고 세금 총액을 계산해서 부과하는 역할을 바로 삭개오 같은 세리장이 했던 겁니다. 

그렇다고 세리장도 직접 세금을 거두러 다니진 않았습니다. 세리장은 세금을 거두는 권리를 다른 사람들에게 주었는데, 이 권리를 얻으려는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이 얼마만큼의 세금을 거두어서 세리장에게 주겠다는 일종의 입찰을 거쳤습니다. 그러다 보니 당연히 가장 높은 금액을 써내는 사람에게 세금 징수권이 돌아가는게 뻔한 이치였습니다. 그리고 이 일을 맡아서 하던 사람들이 바로 세리였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세리는 자신의 몫과 세리장에게 줘야할 금액을 고려해서 더 많은 세금을 징수했다고 합니다. 그러니 유대인 중 누가 이런 세리와 세리장을 좋아했겠습니까?

오늘 본문은 삭개오를 “세리장”으로, 그리고 키가 작았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표현으로 볼 때, 삭개오는 유대인들이 무시하기에 충분한 조건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예수님이 여리고에 오셨을 때, 삭개오는 무리의 가장 앞에서 예수님을 본 것이 아니라, 길을 터주지 않는 사람들로 인해 돌무화과나무 위로 올라가 예수님을 보았던 겁니다. 물론 삭개오가 돌무화과나무에 오른 이유는, 그가 키가 작았던 이유 외에도 또 다른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돌무화과나무가 삭개오를 숨겨주기에 충분한 장소라는 이유입니다.

사람들의 눈총과 죄인이라는 손가락질을 받기에 충분했던 삭개오는, 사람들의 눈을 피해 돌무화과나무 위로 올랐습니다. 그만큼 예수님을 만나고 싶었던 겁니다. 사실 여리고는 종려나무의 성읍이라 불릴 정도로 종려나무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하필 돌무화과나무로 오른 이유가 있습니다. 돌무화과나무는 열매가 무화과보다 덜 달고 작습니다. 하지만 열매가 상대적으로 자주 열리기에 가난한 이들의 배를 채워주는 중요한 열매 중 하나였다고 합니다. 돌무화과나무의 열매에 일일이 구멍을 내서 올리브 기름을 발라주면 무화과처럼 달콤한 열매가 되는데, 이것을 배양하기 위해 사람들이 돌무화과나무에 오르는 일이 빈번했다고 합니다. 물론 삭개오처럼 부유한 사람이 오르다는 것은 체면을 구기는 일이기도 했지만, 돌무화과나무의 가지와 이파리로 삭개오의 신분은 가려질 것이 분명했기에, 삭개오는 돌무화과나무에 오른 거였습니다. 성경에는 삭개오가 돌무화과나무에 올랐다고만 설명하고 있지만, 사실 나무에 오른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겁니다. 돌무화과나무는 18미터까지 자라는 나무입니다. 그런데 이런 나무에 사람들의 눈을 피해 오르려면 각별한 노력과 용기가 필요했을 것으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비록 이름에 걸맞게 의롭고 깨끗하게 살지 못했기에 많은 사람들 앞에 떳떳하게 서지 못했던 삭개오였지만, 그는 자신의 삶에 대한 거룩한 불만과 새로운 삶에 대한 기대를 품고, 예수님을 보고자 하는 뜨거운 열망으로 돌무화과나무에 올랐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숨어서 예수님을 봤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삭개오가 올라간 돌무화과나무에 이르셨을 때, 그곳을 지나치지 않으시고 숨어보던 삭개오를 발견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를 쳐다보시고 말씀하셨습니다.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예수님이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삭개오를 보신 것은 결코 우연히 일어난 일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유독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키가 작은 삭개오, 돌무화과나무에 숨어 지켜보던 삭개오를 바라봐 주셨습니다. 사람들은 외면하고 혐오스러워하며 손가락질했던 그 삭개오를 구원받은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인정해 주셨습니다(9). 예수님은 삭개오를 이미 아셨고, 그랬기 때문에 그의 이름을 불러주셨습니다. 그랬을 때, 그 은혜로 삭개오는 구원을 얻었습니다. 물론 삭개오가 돌무화과나무에 오르면서까지 예수님을 보고자 하는 간절함이 일조를 했고, 예수님의 부르심에 즉각적으로 돌무화과나무에서 내려온 순종이 일조를 했지만, 좀 더 근원적으로 그가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을 영접할 수 있었던 것은, 예수님이 삭개오가 있는 여리고로 오셨고, 예수님이 먼저 삭개오를 바라봐 주셨으며, 예수님이 먼저 그의 이름을 불러주셨던 은혜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유대인의 민족주의적 관점에 있어서 삭개오는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불릴 자격이 없었지만, 예수님의 관점에 있어서 삭개오는 사랑과 긍휼로 구원해야 할 영혼, 주님께서 잃어버린 하나의 영혼이었습니다. 그가 비록 흔한 신앙고백이나 회개 한마디 없었을지라도, 예수님은 그의 중심을 먼저 보시고, 그의 집에 유하겠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그 말씀에 평소 삭개오를 못마땅하게 여기던 여리고 주민들은 예수님의 말과 행동에 적잖게 실망하게 되었을 겁니다. 하지만 수군대는 군중들이 예수님을 바라보며 죄인의 친구라 조롱했을지라도, 그 조롱이 잃어버린 영혼, 삭개오를 향한 예수님의 사랑을 결코 가로막을 수 없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았기에, 로마서 8장 38절과 39절에서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나는 확신합니다. 죽음도, 삶도, 천사들도, 권세자들도, 현재 일도, 장래 일도, 능력도, 높음도, 깊음도, 그 박에 어떤 피조물도, 우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 <표준새번역, 로마서 8:38-39>

 

이처럼 주님의 은혜와 사랑은 크고 놀랍습니다. 그 어떤 것도 우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결코 끊을 수 없습니다. 오늘 말씀에서는 그 놀라운 사랑과 은혜를 이렇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먼저 찾아오시고, 먼저 발견하시며, 먼저 이름을 불러주시는 주님의 사랑과 은혜! 더 나아가 집에 유해주시며 구원을 약속하시는 놀라운 사랑과 은혜! 여러분 삶과 가정 가운데에도 이런 놀라운 주님의 사랑과 은혜가 가득하길 축복합니다.

 

예수님과 삭개오의 만남은 분명 아주 오래된 과거의 사건입니다. 하지만 잃어버린 자를 찾으시는 하나님의 마음은 오늘도 변하지 않았고, 구원의 사건은 지금도 계속 일어나고 있습니다. 속히 내려오라고, 오늘 너의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고 말씀하시는 표현과 함께 삭개오를 구원하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뜻은 여전히 확고합니다. 삭개오가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급히 내려온 것은, 그런 하나님의 간절한 초청에 즉각적으로 순종하며 응답하는 모습을 나타내주고 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찾으실 때, 우리는 과감히 돌무화과나무를 내려와야 합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돌무화과나무를 오른 삭개오를 바라보며, 신앙의 도약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면, 이제는 키가 작으니 올라가도 된다는 돌무화과나무, 열등감과 고독과 소외와 배척을 핑계삼아 올라갈 수 있었던 돌무화과나무, 가난한 자들의 등에 올라타 그들을 발로 짓밟음으로 부를 추적하고, 그것이 세리장으로 어쩔 수 없었다는 그런 합리화에서, 우리는 과감히 내려와야만 합니다. 이제 가난한 자들의 생존을 위한 돌무화과나무 열매를 훼손하면서 그곳에 올라갔던 삭개오에게, 더이상 짓밟을 돌무화과나무는 필요 없어졌습니다. 자신이 도리어 짓밟힐 돌무화과나무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삭개오와 함께 하시기 때문에.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자신의 몸을 아낌없이 내어주시려고 우리 가운데 오셨기 때문에. 그리고 이제 삭개오는 그런 예수님을 따라 사는 제자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소유를 가난한 이들에게 나눠주는 돌무화과나무가 되었습니다. 이제 그는 자신의 소유를 통해서도 잃어버린 영혼을 구원하는 주님의 도구가 되었기 때문에, 그는 진정 행복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오늘, 지금, 우리를 찾아 부르시고 계십니다. “사랑하는 딸아, 사랑하는 아들아!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 바로 너를 구원하려 함이니라.” 이 한주 주님의 그 부르심에 더욱 응답함으로, 잃어버린 자에서 되찾은 자가 됩시다. 우리 또한 주님의 도구로 잃은 자를 찾는 귀한 사명 감당하길 기대합니다.

 

4. 다듬으심 

  1) 주일 예배를 통해 경험하고 감동받거나 느낀 것은 무엇인가요?

  2) 나에게 있어서 잃어버린 자는 누구일까요? 자유롭게 나눠봅시다.

  3) 오늘도 우리를 찾으시는 주님에게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요?

  4) 앞으로 한 주간 삶 속에서 말씀을 어떻게 적용할지 구체적으로 한 가지만 나눕니다.

 

5. 들어쓰심 

  1)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기 위한 결단과 헌신의 기도하기

  2) VIP(전도대상자), 개인, 가정, 교회, 선교, 나라를 위한 합심중보기도

 

6.  ■가정: 말씀나눔   ■소그룹: 말씀나눔/ 소식나눔   ■헌금찬송 191장/ 주기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