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환영과 찬양
◾ 기쁨으로 서로 환영하며 축복합니다. 잠시 교제의 시간을 가집니다.
◾ 찬송 35장 ◾ 복음송 빛을 들고 세상으로
◾ 기도 맡은이 혹은 합심기도
2. 먼저오심
1) 지난 한 주간의 이야기(행복, 고마움, 힘듦)를 서로 나눕니다.
2) 지난 한 주간 어떤 기도를 했는지 서로 이야기합니다.
3. 만나주심
◾ 성경본문 : 빌립보서 2:12-18
온전한 순종으로 겸손의 십자가를 지신 그리스도를 찬미하는 아름다운 찬송을 들려준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신 것처럼, 빌립보의 성도들도 온전히 순종하기 권면합니다. 바울은 먼저 자신과 관련된 상황을 떠올립니다. 그것은 바울이 “그들과 함께 있든지, 아니면 지금과 같이 없을 때든지”라는 상황입니다. 바울은 자신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든지 상관없이 빌립보의 성도들이 믿음으로 굳게 서서 구원을 이루어 나갈 것을 진심으로 구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바울은 성도들에게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이루라고 말씀합니다. 두렵고 떨리는 마음은 우리가 하나님을 바라보고 대할 때 지녀야 할 매우 중요한 태도입니다(시 2:11). 그런데 바울은 이런 태도를 하나님의 일꾼과 지도자를 대하는 태도로 설명하기도 하였습니다(고후 7:15). 언제나 경건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의식하면서, 하나님의 사역자들을 존중하고 대하는 것은 성도의 순종의 삶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구원을 이루십시오
바울은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자기의 구원을 이루어 나아가라”라고 말씀합니다. “자기의 구원”이란 무엇일까요? 두 가지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개인의 종말론적 구원의 의미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점이 있습니다. 여기서 구원은 종말적인 사건만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심판의 날에 영광의 자리에 들어갈 수 있도록 믿음을 지키고 믿음이 성장하는 것을 말합니다. 또한 그리스도를 닮아 성숙하여 그리스도의 충만하심의 경지에 이르는 전 과정을 포함합니다. 구원의 또 다른 이해는 공동체적 구원인데 ‘사회적 구원’이라고 말합니다. 개역개정은 “너희 구원”을 이루라고 번역했습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이 의미하는 중요한 점입니다. 우리는 바울이 믿음의 공동체에게 말씀하고 있음을 놓치면 안 됩니다. 구원은 단지 개인의 구원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성도가 이루어야 할 ‘공동체적인 완성’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구원을 “이루라”는 단어가 어색하게 느껴집니다. 13절에서는 같은 의미의 단어가 활동(행함)과 실천(행함)으로 번역되었습니다. 우리는 구원을 ‘이룬다(행하다)’라는 표현을 거의 사용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구원을 ‘받는다’라는 표현에 익숙합니다. 그렇다면 구원을 이루는 것이 맞습니까, 아니면 구원을 받는 것이 맞습니까? 구원을 이미 받은 것입니까(과거), 아니면 장차 이루어가야 하는 것입니까(미래)? 구원은 믿음입니까, 아니면 행함입니까? 우리가 로마서를 주의 깊게 읽어보면 사도 바울은 구원에 있어서 믿음과 행위를 대립적으로 보기보다는 오히려 조화로운 개념으로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믿음과 행위는 대립의 개념이 아니라 통합적 개념입니다. 갈라디아서에서 바울은 할례에 관해 설명하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믿음이 사랑을 통하여 일(행동)하는”(갈 5:6) 것이라고 말씀한 것과 같습니다. 구원은 하나님이 이루신 일이고,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입니다. 그러나 구원을 이룸에 있어서 은혜를 입은 우리의 책임과 순종의 삶이 제외될 수 없습니다. 우리가 믿음을 강조하는 만큼, 행위가 따라야만 합니다. 우리가 행동하는 만큼 믿음의 소중함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일하십니다
바울은 먼저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고자 하는 염원을 주신다고 말씀합니다. “염원”이란 마음에 일어나는 강한 열망과 의지, 혹은 소원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염원하는 의지를 주셔서 행동하게 하십니다. 그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그 염원을 실천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염원한 것을 행동하고 실행하게 하는 에너지를 주십니다. 바울은 하나님이 빌립보의 성도들에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고자 하는 의지를 주시고, 그대로 실천하고 이룰 수 있는 에너지를 주시기 때문에 그들이 구원을 이루어 갈 수 있음을 알려줍니다. 특별히 바울이 기대하는 공동체적 구원의 완성은 성도들이 개인적인 구원의 완성을 이루면서(성화)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하나가 되는 것, 곧 그들이 온전한 평화와 사랑의 일치를 이루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열매입니다. 교회의 온전한 평화와 공동체적 성화를 이루는 구원의 완성은 하나님의 은혜와 역사와 능력으로만 가능합니다. 이때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 앞에 온전한 책임과 순종의 헌신으로 응답할 때 구원을 이루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헛되게 만들지 말아야 합니다.
일치와 평화를 이루십시오
이제 바울은 공동체의 샬롬을 이루기 위해 두렵고 떨리는 자세로 어떻게 해야 할지를 구체적으로 가르쳐줍니다. “무슨 일이든지, 불평과 시비를 하지 말고 하십시오.”(14절) 성도는 무슨 일이든지 불평하지 말아야 합니다. “불평”이란 수군거리고 구시렁대는 것, 혹은 원망하는 것입니다. 불평은 공동체에 큰 위협이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기는커녕 오히려 모세에게 불평하고 하나님을 원망했던 출애굽 1세대는 구원의 땅을 들어가 보지도 못하고 모두 광야에서 죽었습니다. 불평이 멸망의 원인이 된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온전한 성도의 삶은 “불평 없이 서로 따뜻하게 대접”(벧전 4:9)하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누구에게 불평할 일이 있더라도, 서로 용납하여 주고, 서로 용서하여 주는 것이”(골 3:13) 마땅합니다. 우리가 하지 말아야 할 것은 또 있습니다. 그것은 “시비”입니다. 시비는 서로 다른 생각을 하면서 논쟁하여 다투거나 의심하는 행위입니다. 불평과 시비는 공동체가 분열하고 다투어 하나를 이루지 못하게 하는 최악의 태도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마 5:23-24)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하나가 되기에 힘써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일치와 평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구원을 이루어가는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 수군거리거나, 원망하거나, 불평하는 일이 없어야겠습니다. 시비가 없어야 하겠습니다. 자기의 고집을 내려놓고 뒷담화를 멈추며, 성령께서 평화의 띠로 우리를 하나가 되게 해주신 것을 힘써 지킵시다.(엡 4:3)
별처럼 빛나십시오
이렇게 할 때 우리는 이 세상에서 하늘의 별과 같이 빛나는 존재가 됩니다. 세상은 “구부러지고 뒤틀린 세대”입니다. 바울 시대에 황제를 주로 고백하며 황제숭배에 정신이 없었듯이, 지금도 세상은 황금과 권력을 숭배하는 우상으로 가득합니다. 세상은 바울을 감옥에 가두었듯이 불의한 우상의 가치로 우리를 옥죄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를 높여 온 세상이 그 앞에 무릎을 꿇게 하셨지만, 그리스도의 통치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마지막 승리의 그날까지 뒤틀린 이 세상에서 흠 없고 순결한 존재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기대하시는 모습은 정말 아름답고 거룩한 모습입니다. 어둡고 시궁창 같은 세상에서 별처럼 빛나는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세상과는 다른 가치와 삶을 보여주는 것, 세상과는 차별화된 삶을 사는 것이 빛나는 삶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부끄럽게도 오늘날 교회는 세상과 너무도 닮아서 무시 받고 비난받으며, 맛 잃은 소금이 된 것은 아닙니까? 우리는 흠 없고 순결하게 살기 때문에 고난받는 그 영광을 되찾아야겠습니다. 온 성도가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하나가 되고, 참 평화와 기쁨을 누리며, 순결하고 흠 없는 삶을 힘쓸 때 우리는 빛날 것입니다. 교회는 빛날 것입니다.
교회는 세상에 빛을 비추는 그리스도의 몸이 되어야 합니다. 별처럼 빛나기 위하여 우리가 엄청나고 대단한 업적을 이루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주님이 에너지를 주시고 가능케 하십니다. 그러니 주신 말씀대로 따르면 됩니다. 오직 그리스도 예수님을 주님으로 경배하며,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추구하고,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어 불평과 시비 없이,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고, 다른 사람의 일도 돌보아주며,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순종의 삶을 살 때 우리는 빛나는 별이 될 것입니다.
생명의 말씀을 굳게 잡으십시오
바울은 이렇게 구원을 이루는 삶에서 “생명의 말씀을 굳게 잡으십시오.”라고 말씀합니다. 적대적인 환경 속에서 생명의 말씀을 굳게 붙잡는 신실한 믿음의 헌신과 지킴을 말씀한 것입니다. 세상에서 별처럼 빛나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생명의 말씀을 굳게 붙잡고 믿음은 단단히 지켜내야 합니다. 더 나아가 바울은 빌립보의 성도들이 어두운 세상에서 태양처럼 빛나고 별처럼 반짝이는 흠이 없고 복음을 전파하는 공동체가 된다면, 바울 자신의 수고가 헛된 것이 아님을 증명하는 일이 될 것이라고 합니다. 이것이 감옥에 갇힌 바울의 간절한 소망이었습니다.
이제 바울은 자신의 순교적 죽음을 다시 생각합니다. “믿음의 제사와 예배에 나의 피를 붓는 일이 있을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여러분 모두와 함께 기뻐하겠습니다.”(17절) 피를 붓는다는 것은 구약의 제사에서 제물을 드리는 것을 말하는데, 바울은 자신의 순교를 하나님께 피를 뿌려 제물로 드리는 것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구약의 제사처럼 지금 우리의 예배와 헌금과 봉사는 자신을 하나님께 제물로 드리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는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의 본을 따르는 것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대제사장으로서 자신을 대속의 제물로 드리셨습니다. 제사장 자신이 곧 제물이 되는 이 신비롭고 놀라운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모든 성도가 감당해야 할 사명입니다. 바울은 성도들이 어떤 상황에서도 천국 시민으로 복음의 삶을 살고,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일치된 평화의 교회를 세우며, 함께 성장하고 성숙하며 거룩한 믿음의 길을 아름답게 완성할 것을 격려하고 소망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별입니다. 빛나지 않으면 별이 아니듯이, 우리 안에 하나님이 주신 생명의 빛이 없으면 성도가 아닙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빛이 되어 세상으로 나아가십시오. 우리 영혼에는 주님이 주신 빛이 있습니다. 우리는 마음에 빛을 지닌 가족입니다. 이제 일어나십시오. 빛을 들고 어두운 세상으로 나아가십시오. 혼돈과 절망이 가득한 곳에 빛을 비추십시오. 절망에 빠진 형제의 꺼져가는 불을 보십시오. 방황하는 자매의 꺼져가는 불을 보십시오. 빛을 들고 세상으로 달려가십시오. 외로운 영혼을 비추고, 고통받는 자를 비추어 일으켜 주십시오. 빛을 들고 세상으로 나아가십시오. 우리 맘에는 빛나는 빛이 있습니다. 거룩한 주님의 사랑의 빛이 있습니다. 은혜의 빛이 있습니다. 생명의 빛이 있습니다. 우리 이 빛을 모아 세상의 아픔을 감싸주고 세상의 어둠을 밝혀주고 세상의 절망을 보듬어줍시다. 빛을 들고 세상으로 나아가십시오. 세상을 비추십시오.
4. 다듬으심
1) 주일 예배를 통해 경험하고 감동받거나 느낀 것은 무엇인가요?
2) 바울은 공동체의 샬롬을 이루기 위해 “무슨 일이든지, 불평과 시비를 하지 말고”라고 말합니다. 불평과 시비는 공동체가 분열하고 다투어 하나를 이루지 못하게 하는 최악의 태도입니다. 나는 공동체의 평화를 이루고 있는지 자유롭게 나눠봅시다.
3) 하나님이 우리에게 기대하시는 모습은 이 세상 속에서 별처럼 빛나는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세상의 빛을 비추기 위해 내가 할 노력은 무엇입니까?
4) 앞으로 한 주간 삶 속에서 말씀을 어떻게 적용할지 구체적으로 한 가지만 나눕니다.
5. 들어쓰심
1)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기 위한 결단과 헌신의 기도하기
2) VIP(전도대상자), 개인, 가정, 교회, 선교, 나라를 위한 합심, 중보기도
6. ◾ 가 정 : 말씀나눔
◾ 소그룹 : 말씀나눔/ 소식나눔/ 헌금찬송 502장/ 주기도문
7. 금주의 암송구절 : 금주의 암송구절을 함께 외웁니다.
◾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요 15: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