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환영과 찬양
◾ 기쁨으로 서로 환영하며 축복합니다. 잠시 교제의 시간을 가집니다.
◾ 찬송 268장 ◾ 복음송 주 선한 능력으로 안으시네 ◾ 기도 맡은 이 혹은 합심기도
2. 먼저오심
1) 지난 한 주간의 이야기(행복, 고마움, 힘듦)를 서로 나눕니다.
2) 지난 한 주간 어떤 기도를 했는지 서로 이야기합니다.
3. 만나주심
◾ 성경본문 : 마태복음 6:22-24
1. 서론 : 관용구 이해하기
우리말에 관용구가 있습니다. 관용구는 겉으로 나타나는 표현과 내면의 의미가 다른 말입니다. 예를 들면, “가방끈이 짧다”라는 말이 대표적입니다. 이 말은 실제로 가방끈이 짧다는 뜻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배우지 못해서 학력이 낮음을 뜻합니다. 또 시장에서 자주 쓰고 듣는 관용적인 표현이 있습니다. “바가지를 씌우다”라는 말인데, 이 말도 표현과 달리 원래 물건 가격보다 더 비싸게 팔아서 손해보게 하는 것을 뜻합니다.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이런 관용구가 익숙하고, 그 의미를 제대로 알지만, 외국인의 입장에선 의미 파악이 쉽지 않습니다.
성경에도 유대인들이 사용했던 관용적인 표현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이 표현의 의미를 온전히 알기 위해선 문자 그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들의 문화와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이 그러합니다. 유대인들이 즐겨 사용하던 관용구입니다. 문자 그대로 보면, 그 의미가 아리송하고, 제대로 알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하신 말씀의 참 의미는 무엇일까요?
2. 본론
1) 좋은 눈과 나쁜 눈의 의미
22,23절을 보면, 눈은 온몸의 등불이라고 말합니다. 좋은 눈은 온몸을 밝게 하지만, 나쁜 눈은 온몸을 어둡게 한다고 말합니다. 이 말씀을 두고, 다양한 해석들이 있었습니다. 어떤 학자는 이 눈은 보이지 않는 제3의 눈이다. ‘내면의 눈’이라고 해석하기도 했고, 어떤 목회자는 이 눈은 시력의 건강함을 의미하기 때문에 세상을 볼 수 있음에 감사하라고 해석하는 이도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말씀을 어떤 의미로 하신 걸까요? 히브리어에서 ‘눈’은 남을 대하는 자세와 관련이 있습니다. 좋은 눈을 가졌다는 것은 남의 필요를 살피고 가난한 자에게 넉넉하게 베푼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반면, 나쁜 눈을 가졌다는 것은 욕심이 많고, 자기중심적이며 주변의 궁핍을 외면한다는 뜻입니다. 좋은 눈은 타인의 필요를 알고 베푸는 너그러움이라면, 나쁜 눈은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심과 인색함이에요. 예수님도 이 의미로 말씀하셨어요.
잠언에는 좋은 눈과 나쁜 눈을 이렇게 말합니다. “선한 눈을 가진 자는 복을 받으리니 이는 양식을 가난한 자에게 줌이니라”(잠 22:9) 여기서 선한 눈은 가난한 이들을 위해 베푸는 너그러움을 뜻해요. 악한 눈은 어떻게 말할까요? “악한 눈이 있는 자는 재물을 얻기에만 급하고 빈궁이 자기에게로 임할 줄은 알지 못하느니라”(잠 28:22) 악한 눈은 이기심과 탐심, 인색함을 보여줍니다.
성경의 이러한 표현은 1세기 랍비들의 가르침과도 일맥상통합니다. 랍비 조슈아는 “나쁜 눈, 악한 의도, 인류에 대한 증오가 사람을 세상으로부터 밀어낸다”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과 마찬가지로 이기심과 탐심이 우리 삶을 망가뜨린다고 가르친 겁니다. 이러한 유대인의 관용구를 이해하고 22,23절의 말씀의 의미를 풀면 이렇게 볼 수 있습니다. “만일 당신이 너그러운 사람이라면 평생에 그 너그러움이 들어갈 것이고, 만약 이기적이라면 그 이기심이 당신의 영혼을 좀먹을 것입니다”
우리는 관용적인 표현을 앎으로 본문의 의미를 알게 됐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본문이 가진 의미의 전부는 아닙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성경의 문맥 속에서도 이해해야 합니다. 문맥과 함께 볼 때 그 의미가 완전해지기 때문입니다.
2) 문맥 속에서의 이해하기
마태복음 6장에서 예수님은 자기 소유를 남과 나누는 것에 대하여 설교하셨습니다. 22,23절 직전에 예수님은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마6:19-21)라고 하십니다. 보물을 쌓아둔다는 표현은 가난한 자에게 베푼다는 뜻을 지닌 유대 관용구입니다. 소유를 나누는 것에 관한 것입니다. 그리고 눈에 관한 말씀을 하신 후에 이어서 두 주인, 즉 하나님과 돈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보물을 쌓는 것(19-21절), 좋은 눈과 나쁜 눈(22-23절), 돈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길 수 없음(24절)이 하나의 문맥입니다.
관용적인 의미를 알기 전에는 이 세 말씀이 전혀 연관성이 없어 보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일관성이 없고,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지?’라는 의문이 드셨을 겁니다.
그러나 관용적인 표현을 알고, 세 이야기가 하나의 문맥임을 알면, 그 의미를 이렇게 정리할 수 있습니다. “이웃에게 잘 퍼주는 손이 되고 돈에 종노릇하지 말아라” 이것이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의 진짜 의미입니다. 예수님은 ‘눈’을 돈에 대한 태도와 연결하셨습니다.
3) 눈은 돈에 대한 태도이며, 하나님과의 관계를 보여줍니다.
왜 예수님은 타인을 향한 눈을 중요하게 여기셨을까요? 그리고 왜 눈을 돈과 연결하신 걸까요? 그 이유는 우리와 돈의 관계가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의 현주소이기 때문입니다. 돈과의 관계가 곧 하나님의 관계를 비춰줍니다.
나쁜 눈을 가졌다는 것은 돈에 집착한다는 겁니다. 하나님보다 돈을 더 의지하는 겁니다. 자신이 가진 것에 집착하면서 나보다 많이 가진 사람을 보며 하나님께 원망하고, 나보다 적게 가진 자에게 베풀지 않습니다. 나쁜 눈을 가진 자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돌보시고, 채우시고, 공급하신다는 사실을 신뢰하지 못합니다. 대신 돈이 내 삶을 채워준다고 확신합니다. 이러한 삶은 이웃의 곤고함에도 무감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내꺼, 내꺼, 돈, 돈” 이러면서 살기 때문입니다. 나쁜 눈으로 갖는다면, 결국 그 삶이 어두워지게 됩니다. 스스로 인생을 불행하게 만드는 겁니다.
반면, 좋은 눈으로 산다는 것은 하나님과 어떤 관계를 보여주나요? 좋은 눈을 가진 자는 하나님이 나를 돌보실 뿐만 아니라, 물질적인 필요, 정서적인 필요, 영적인 필요까지 채워주심을 굳게 신뢰합니다. 비록 세상의 기준으로 부자는 아닐지라도 언제나 주님의 돌보심과 공급하심을 신뢰하기에 주어진 것에 자족하며, 타인에게 너그럽게 나눕니다. 좋은 눈을 가진 자는 하나님과 이웃의 관계가 건강하기에 그 삶이 빛처럼 환해집니다. 진정한 행복을 누립니다.
4) 좋은 눈으로 살아낸 초대교회
초대교회에선 예수님의 이 가르침대로 순종했습니다.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사도행전 2:44-47) 초대교회 신도들은 지상의 모든 안락을 포기했지만, 결코 빈궁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잉여분을 나누었고, 모두가 풍성하게 누렸습니다. 하나님의 공급하심과 돌보심을 신뢰했습니다. 사회적 지위나 물질적 안정을 바라며 자기 소유를 움켜쥐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치열하게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좋은 눈’을 살아냈습니다. 그 열매로 그들의 삶을 눈부시게 빛났습니다. 가장 아름답게, 천국답게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세워갔습니다. 오늘 우리도 주님의 말씀을 따라 좋은 눈으로 갖고 순종할 때 우리의 삶뿐만 아니라, 우리교회와 사회를 환하게 비출 수 있습니다.
5) 당신은 어떤 눈을 갖고 있나요?
지금 여러분은 어떤 눈을 갖고 계시나요? 저도 말씀을 준비하면서 제 스스로를 돌아보니, 좋은 눈을 갖고 산 건 아니었습니다. 저의 재정지출을 점검해보니 많은 부분이 결코 좋은 눈이 아니었습니다. 재정의 많은 부분이 자신을 위해 쓰이고 있었어요. 먹고 싶은 것에, 갖고 싶은 것에, 내 가족만을 위해 많은 비율이 쓰이고 있었습니다. 저는 이것이 저만의 이야기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많은 분이 공감하시리라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이 시대의 소비풍조가 그러하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광고가 이런 메시지를 보냅니다. ‘이것만 있으면 행복해질 겁니다, 이것만 가지면 만족스러울 겁니다’ 이 사회의 소비문화가 나에게 없는 것을 비교하게 만들고, 우리 삶에 스스로 불만족스럽게 만듭니다. 거짓 행복과 허영심을 심어줍니다. 오늘 말씀을 들은 우리는 이 시대의 소비문화를 따르기보다 좋은 눈을 갖고 거룩하게 살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3. 결론 : 좋은 눈, 실천합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나누어야 할까요? 구체적으로 얼마나 나누어야 할까요? 우리는 유대인의 지혜 속에서 나눔의 실용적인 면을 배울 수 있습니다. 전통적인 유대인들은 지금도 최소 소득의 10분의 1을 기부합니다. 이를 당연하게 여깁니다. 동시에 나눔의 상한선도 있습니다. 엄청난 부자가 아니라면, 소득의 10분의 2 이상 기부를 만류합니다. 왜 그럴까요? 모든 걸 다 내어주면 내가 가난해져 누군가를 도울 수 없기 때문이에요. 매우 실용적이죠. 우리에게 큰 도움을 줍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입니다. 우리도 주님의 자녀답게 우리의 소유를 너그럽게 자연스럽게 나눌 수 있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선 보다 근본적으로 우리의 재정 전반을 거룩하게 세워가야 합니다. 나눔의 비율만 높이는 것이 아니라, 재정의 모든 영역을 거룩하게 세워야 합니다.
웨슬리는 거룩한 재정 사용을 위해 3원칙을 제시합니다.
1) 할 수 있는 대로 많이 벌라(Gain all you can!)
2) 할 수 있는 대로 많이 저축하라(Save all you can!)
3) 할 수 있는 대로 많이 주라(Give all you can!)
데오도르 제닝스는 웨슬리의 3원칙을 ‘성경적인 경제생활, 복음적인 경제학’이라고 말합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에게 너무나도 소중하고 중요한 거룩한 재정 원칙입니다. 이 세 원칙 중 가장 핵심은 마지막 원칙이에요. 할 수 있는 대로 많이 나누기 위해 많이 벌고, 많이 저축하라는 겁니다.
첫 번째 원칙 ‘할 수 있는 대로 많이 벌라’는 어떤 의미일까요? 수단 방법 가리지 말고, 쉬지 말고 일해서 무조건 많이 벌라는 걸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웨슬리는 자신이나 다른 사람의 생명이나 건강을 해치지 않고,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선에서 돈을 벌라고 말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과도한 노동, 고된 노동을 금하고, 적절하게 먹고, 자고, 쉬어야 하며, 자연과 환경을 파괴하지 않고, 국가와 사회의 법을 정직하게 지키면서 돈을 벌 것을 말했습니다.
두 번째 원칙은 ‘할 수 있는 대로 많이 저축하라’입니다. 이 원칙도 무조건 쓰지도 말고, 먹지도 말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이 원칙은 자신과 가족이 필요만큼 사용하고 그 나머지를 저축하라는 겁니다. 웨슬리가 저축하라는 말은 낭비하지 말라는 말과 동일합니다. 돈을 낭비한다는 것은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위해 사용하는 것입니다. 곧 사치와 허영심을 위해 돈쓰지 말라는 겁니다. 구체적인 예로 술, 담배, 도박, 사치스러운 여행, 미식주의, 화려한 옷, 호화로운 장신구, 사치스러운 골동품이나 미술품을 사는 일, 집을 화려하게 꾸미는 일, 자녀에게 허영심을 주는 일에 돈을 쓰지 말라고 합니다. 그런 일에 정직하게 번 돈을 낭비하지 말고, 저축하라고 합니다.
마지막 세 번째 원칙은 '할 수 있는대로 많이 주라’입니다. 여기서 ‘주다’는 본질적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헌금이 전부는 아닙니다. 자기 자신과 가정의 필요를 위해 돈을 사용하는 것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고, 국가를 위해 세금을 내는 것도 하나님께 드리는 것에 포함돼요. 할 수 있는 대로 많이 주라는 말은 자신과 가정을 위해 필요한 만큼을 사용하고 국가의 의무를 다한 후에 가능한 한 많이 나누라는 의미입니다.
웨슬리는 더 나아가 그리스도인들에게 더 큰 나눔과 선행을 베풀 것을 도전합니다. “경건한 유대인은 자기 수입의 10분의 1을 주고, 훌륭한 바리새인은 10분의 2를 주나 진정한 기독교인은 2분의 1, 4분의 3 또는 그 이상 모든 것을 주어야 합니다” 웨슬리는 실제로 그러한 삶을 살았습니다. 사람들을 유익하게 하기 위해 다양한 분야의 책들을 씁니다. 그리고 이 책들이 팔리면서 자기도 모르게 부자가 됐습니다. 하지만, 그는 평생토록 자신이 필요한 만큼만 정해놓은 금액만 사용하며, 할 수 있는 대로 많이 나누었습니다. 이러한 그의 실천과 정신이 당시 병들고 혼란스럽던 영국 사회를 거룩하게 물들였습니다.
4. 나가는 말
좋은 눈을 갖게 되길 축복합니다. 다른 사람을 위해 너그러운 마음으로 나누시길 축복합니다. 우리가 좋은 눈으로 가질 때 우리 삶이 거룩한 빛으로 환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과 이웃의 관계가 건강하게 세워지고, 진정한 행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거룩한 삶과 거룩한 사회가 세워질 것입니다. 이번 한 주 성령님의 도우심과 이끄심을 구하며 좋은 눈을 갖고 믿음의 삶 선하게 승리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4. 다듬으심
1) 주일예배를 통해 경험하고 감동 받거나 느낀 것은 무엇인가요?
2) 나에게 나눔을 어렵게 하는 것은 무엇이 있을까요?
3) 좋은 눈을 갖기 위한 나의 노력은 무엇이 되어야 할까요?
4) 앞으로 한 주간 삶 속에서 말씀을 어떻게 적용할지 구체적으로 한 가지만 나눕니다.
5. 들어쓰심
1)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기 위한 결단과 헌신의 기도하기
2) VIP(전도대상자), 개인, 가정, 교회, 선교, 나라를 위한 합심중보기도
6. ◾ 가정: 말씀 나눔 ◾ 소그룹: 말씀나눔/ 소식나눔/ 헌금찬송 302장/ 주기도문
7. 금주의 암송구절: 금주의 암송구절을 함께 외웁니다.
◾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한복음 1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