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 순서
예배로부름
찬송: 29장(성도여 다함께), 호산나
신앙고백(사도신경)
공동체 합심 기도: 회개, 참된 예배, 코로나 사라지도록
성도의교제
성경봉독: 마태복음 21:1-11
말씀: 생명의 봄 길을 걷는 사람
결단과 봉헌: 370장, 주 안에 있는 나에게
*봉헌기도
*찬양 ‘아무것도 두려워 말라’
*축도
생명의 봄 길을 걷는 사람 마태복음 21:1-11 (종려주일)
올해의 사순절은 코로나19로 혼돈과 두려움과 아픔 속에 지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 자신을 많이 생각하며 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 인간의 탐욕이 가져오는 재앙이 얼마나 두려운지, 우리가 얼마나 하나님을 주변으로 몰아내고 나 중심으로 살았는지, … 이탈리아 롬바르디아 병원의 한 무신론자인 의사가 “지금 우리에겐 하나님이 필요하다”고 말했듯이 우리는 하나님의 자비하심과 은총만을 간절히 구할 수밖에 없는 지금입니다.
공관복음이라고 불리는 마태, 마가, 누가의 3개의 복음서에는 예수님이 천국 복음을 선포하신 이후 예루살렘 성안으로 들어가셨다는 기록이 전혀 없습니다(요한 복음은 다릅니다.). 그러다가 오늘 본문에 이르러서 예수님이 마침내 예루살렘으로 발길을 옮기시게 됩니다. 그만큼 예루살렘은 매우 중요하고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이라는 지명이 언급될 때에 그곳은 옛구님이 고난을 받으시고 죽임을 당하실 곳으로 드러납니다(마 16:21, 눅 9:31). 그렇다면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은 곧 예수님이 죽음의 길로 들어서신 것임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이미 예고하신 대로 예루살렘을 향하여 다가가십니다. 마태는 예수님의 예루살렘의 입성을 스가랴 선지자의 예언 성취로 보았습니다(5절, 슥 9:9).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의 길은 인류의 역사에 생명의 봄을 여는 위대한 봄 길이었습니다.
사명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은 사명의 봄 길이었습니다.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눅 19:10). 이것이 예수님의 사명선언문입니다. 예수님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그 목적을 이루시기 위해 죽음이 기다리는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셨습니다. 예수님의 사명은 오직 죽음으로써 이룰 수 있는 사명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죽음으로 사명을 이루시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셨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사명의 봄 길을 걸으셨습니다. 예루살렘 입성 끝에는 십자가가 서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사명을 피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의 삶은 어디로 향하고 있습니까? 코로나19로 혼란한 이 때에 우리는 사명을 굳게 잡고 있습니까? 우리는 삶의 자리에서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로서 빛과 소금의 삶을 살아가기에 힘쓰고 있습니까? 우리가 걷는 사명의 길은 넓은 길이 아닙니다(마태 7:13). 우리가 가는 믿음의 길은 인기 있는 길이 아닙니다. 넓고 편한 길이 아닙니다. 우리가 성도인 것은 난리인 세상에서 겸손과 섬김과 손해와 희생과 사랑의 길을 위해 예루살렘으로 들어가기 위함입니다. 많이 힘들고 지치고 두렵더라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찾은 사명의 길, 사랑과 섬김의 길을 함께 걸어갑시다.
생명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의 길은 죽음을 향한 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길은 우리에게는 생명의 봄 길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돌아가심이 우리에게는 영생의 복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은 이 세상에 오셔서 군림하시기 보다는 섬기셨고, 명예를 얻기보다는 멍에를 지셨고, 영광을 얻기보다는 비천하게 되셨고, 자기를 구하기보다는 자기를 내어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과 섬김의 완성을 위해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온전히 우리를 살리기 위한 대속의 대속의 죽음이었습니다.(사 53:4-7) 예수님이 저주받아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는 나음을 받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의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한 생명의 꽃이 피었습니다. 그러니 주님을 예배하는 우리는 죽음으로 우리를 살리신 생명이 구세주 예수님께 진정한 경배와 감사와 영광의 호산나를 외칩시다. 그러나 이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우리를 위해 생명의 씨앗이 되어주신 주님은 우리도 주님처럼 생명의 씨앗이 되라고 하셨습니다(요한 12:24). 우리는 어떻게 밀알이 될 수 있을까요? 우리의 간절한 중보의 기도, 친절한 마음, 섬김의 손길이 아닐까요? 우리는 어느 곳에서든, 어떤 상황에서든 한 알의 밀알이 되어 생명의 봄 길을 걷는 고난주간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평화
예수님께서 그렇게 사명과 생명의 봄 길을 걸으심으로 우리에게는 참 평화가 은혜로 주어졌습니다. 예수님이 생명을 주셔서 우리가 새로운 존재가 되었고, 평화를 주심으로 복된 삶을 살게 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친히 십자가에서 화목 제물로 자신을 내어주셨기에 하나님과 원수였던 우리는 하나님과 화해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엡 2:14-16). 예수님이 겸손히 나귀 새끼를 타고 걸어가신 그 길은 우리를 위한 화해와 평화의 봄 길이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우리의 중심에 평화의 왕으로 모신다면, 하나님과 화평한 우리는 이웃과 화평한 삶의 길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아직도 인간 관계 안에 쌓아 놓은 담이 있습니까?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막힌 담이 있습니까? 고난주간 동안 쌓았던 모든 막힌 담을 허물어버립시다. 고난주간이 우리에게 화해의 여정이 되게 합시다. 주님 걸으신 그 길 따라 우리도 주님과 함께 사명의 길, 생명의 길, 평화의 길을 걸어 갑시다. 코로나로 멈춘 세상, 흩어진 세상, 절벽의 세상, 아픔의 세상에서 예수님을 닮아 사랑이 되어 생명의 봄 길을 걷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정호승 시인의 ‘봄 길’이라는 시가 깊이 다가옵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길이 있다/길이 끝나는 곳에서도/길이 되는 사람이 있다/스스로 봄 길이 되어/끝없이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강물은 흐르다가 멈추고/새들은 날아가 돌아오지 않고/하늘과 땅 사이의 모든 꽃잎은 흩어져도/보라/사랑이 끝난 곳에서도/사랑으로 남아 있는 사람이 있다/스스로 사랑이 되어/한없이 봄 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