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301 동수교회 주일 예배 실황 영상 "위로부터 태어난 사람"

작성 동수교회
날짜 2026-03-04
설교한 날
2026/03/01 일
성경 본문
요한복음 3:1-17
설교
주학선 담임목사

위로부터 태어난 사람(요한복음 3:1-17)

1. 환영과 찬양

◾ 기쁨으로 서로 환영하며 축복합니다. 잠시 교제의 시간을 가집니다.

◾ 찬송 43장 ◾ 복음송 주가 일하시네

◾ 기도 맡은이 혹은 합심기도

2. 먼저오심

1) 지난 한 주간의 이야기(행복, 고마움, 힘듦)를 서로 나눕니다.

2) 지난 한 주간 어떤 기도를 했는지 서로 이야기합니다.

 3. 만나주심

◾ 성경본문 : 요한복음 3:1-17

오늘 우리가 만나는 말씀은 한 남자의 ‘어두운 밤’에서 시작됩니다. 그의 이름은 니고데모입니다. 그는 세속적인 성공과 종교적인 경건을 모두 성취하여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갓생(God-生)’의 표본이었습니다. 그는 영혼의 깊은 밤에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3절) 니고데모가 영혼의 어둔 밤에 갇혀 있음을 아시는 주님은 “니고데모야 너의 노력, 너의 혈통, 너의 권력, 너의 종교심, 너의 지식의 성취로는 결코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 너는 거듭남의 은총을 입어야만 한다.”라고 그의 내면에 돌직구를 날리셨습니다. 니고데모가 묻습니다. “사람이 늙었는데, 그가 어떻게 태어날 수 있겠습니까?” 니고데모가 예수님께 물었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모른다는 고백입니다. 진리의 빛이신 예수님 앞에서 니고데모의 어둠(무지)이 드러난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다시 태어남”은 무슨 뜻일까요? 이 단어는 그리스어로 아노센입니다. 이 단어는 공간적 의미로는 ‘위로부터’, ‘하늘로부터’라는 뜻인데, 무엇의 기원과 근원을 나타내는 단어입니다. 그런데 니고데모는 아노센을 시간적 의미 중에서도 ‘다시, 두 번, 반복’의 뜻으로 생각했습니다. 이것은 니고데모의 한계를 드러냅니다. 그는 인간의 경험과 논리 안에서 ‘태어남’을 시간의 수평적 사건으로 이해한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뜻하신 것은 ‘위로부터’ 곧 수직적 사건이었습니다. 이것은 생명과 변화의 근원적인 시작을 의미하는 것으로 ‘태어남’은 하늘로부터 오는 하늘의 은총임을 밝혀주셨습니다.

업데이트가 아닌 재창조

 그렇습니다. 태어남은 하늘의 사건입니다. 아무리 ‘다시’ 시도하고 훈련하고 수양해도 인간은 스스로 하나님 나라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 구원은 인간의 역사라는 수평선 위에 하나님이 수직으로 임하시는 사건입니다. ‘위로부터 태어남’은 다시 시도하고 다시 시도하는 인간의 모든 노력과 율법의 가능성이 사라진 곳에서 시작되는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의 역사입니다. 위로부터 태어남을 니고데모처럼 2차원으로 이해할 때 거기에는 율법주의와 세상의 가치가 스며들 수밖에 없습니다. 하늘나라를 얻기 위해서는 더 열심히 하고, 더 잘하고, 더 노력하고, 또다시 시도하면서 ‘다시’ 태어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에는 진정한 ‘태어남’이 없습니다. 단지 개선이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위로부터’의 탄생은 과거의 데이터로 계산하고 예측할 수 없는 ‘새로운 나’의 창조입니다. 위로부터 오는 은총이 없이는 태어날 수 없습니다. 니고데모는 자신이 성취한 삶을 살았지만, 그것의 결론은 실존의 공허와 영혼의 어둠이었습니다. 그는 지금 빛이신 주님 앞에 나와 자신과 씨름하고 있습니다. 구원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임을 알게 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바람은 불고 싶은 대로 분다. 너는 그 소리는 듣지만,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는 모른다. 성령으로 태어난 사람은 다 이와 같다.”

성령의 바람

위로부터 태어난다는 것은 성령으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시는지 알 수 없지만, 성령님은 지금 살아 계시고 움직이는 생명력입니다. 우리가 위로부터 태어날 때, 곧 성령으로 태어날 때 우리는 성령님과 실시간으로 동행하는 생명의 삶을 삽니다. 이것이 천국의 삶입니다. “위로부터 태어나라”라는 말씀은 “네 노력을 반복하고 다시 하고 업데이트하라”가 아니라 위로부터 오는 “하나님의 생명을 수용하라”라는 은혜의 초청입니다. 당신은 지금 더 나은 사람이 되려고 애쓰고 있습니까, 아니면 그리스도 안에서 새사람이 되고 싶습니까? 복음은 단순히 ‘좋은 사람’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사람’을 만듭니다. 생명과 만물의 근원이신 하나님, 위로부터 주시는 새로운 존재가 되는 것이 ‘거듭남’입니다. 이것이 기독교 신앙의 핵심입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인생을 성령님과 연결하고, 새사람이 되어 하늘나라의 삶을 살 수 있을까요? 예수님은 먼저 ‘광야의 뱀’을 말씀하십니다. 뱀에 물려 죽어가는 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독에 대한 분석이나 치료법에 대한 논쟁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말씀을 믿고 ‘위를 바라보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선언하십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거듭남은 인간의 수양과 행위의 결과가 아니라, 사랑의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여 이루시는 ‘생명의 창조’ 은혜입니다. 장대 높이 달린 놋뱀처럼 독생자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셔서 우리를 위해 위로부터 열리는 길이 되셨습니다. 하나님이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신 것은 그를 믿음으로 우리가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었습니다. “영생”은 죽지 않고 오래 사는 ‘생물학적 불멸’이 아닙니다. 영생은 위로부터 태어나 하나님의 생명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영생의 삶은 하나님의 통치 아래에서 지금 하늘나라를 사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그 생명의 길을 걷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응답하여 믿음으로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는 순간 우리는 고립된 ‘어두운 밤의 자아’를 벗고 영원한 ‘빛의 사귐’으로 들어갑니다. 이렇게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를 봅니다. 천국은 지금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누리는 사랑과 생명이 넘치는 삶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순절은 우리가 평소보다 조금 더 도덕적인 사람이 되려고 고행하는 시간이 아닙니다. 사순절은 위로부터 임한 하나님의 거대한 사랑 앞에 우리의 전적인 무력함을 인정하고, 그분의 생명 안으로 온전히 잠기는 '거룩한 탄생의 시간'입니다. 위로부터 임하는 그 영원한 생명의 바람이 지금 우리의 영혼을 향해 불어오고 있습니다. 지금 성도님은 하나님의 사랑이 위로부터 주신 영생의 삶을 살고 있습니까?

 4. 다듬으심

1) 주일예배를 통해 경험하고 감동받거나 느낀 것은 무엇인가요?

2) 니고데모는 모두가 부러워할 만한 인생을 살았지만 영혼의 깊은 밤을 경험하고 있었습니다. 괜찮아보이나, 마음 깊은 곳에 공허함을 안고 있던 나의 ‘어두운 밤’, 하나님을 더 깊이 찾게 된 순간은 언제였는지 함께 나눠봅시다.

3) 광야에서 놋뱀을 바라본 것처럼, 예수님은 믿음으로 ‘위를 바라보라’고 하십니다. 우리 삶의 문제와 고민 앞에서, 나는 무엇을 바라보며 살았는지 믿음의 결단과 함께 나눠봅시다.

4) 앞으로 한 주간 삶 속에서 말씀을 어떻게 적용할지 구체적으로 한 가지만 나눕니다.

5. 들어쓰심

1)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기 위한 결단과 헌신의 기도하기

2) VIP(전도대상자), 개인, 가정, 교회, 선교, 나라를 위한 합심, 중보기도

6. ◾ 가 정 : 말씀나눔

    ◾ 소그룹 : 말씀나눔/ 소식나눔/ 헌금찬송 84장 / 주기도문

7. 금주의 암송구절 :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악인들은 그렇지 아니함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그러므로 악인들은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들이 의인들의 모임에 들지 못하리로다 무릇 의인들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시편 1:1-6)

  • 2026-03-04 03:04:56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