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환영과 찬양
■ 기쁨으로 서로 환영하며 축복합니다. 잠시 교제의 시간을 가집니다.
■ 찬송 161장 ■ 복음송 유월절 어린양의 피로 ■ 기도 맡은이 혹은 합심기도
2. 먼저오심
1) 지난 한 주간의 이야기(행복, 고마움, 힘듦)를 서로 나눕니다.
2) 지난 한 주간 어떤 기도를 했는지 서로 이야기합니다.
3. 만나주심
■ 성경본문: 누가복음 24:1-12
할렐루야! 주님 다시 사셨습니다! 주님 부활하셨습니다! 안식이 지난 후 첫날 곧 주일의 새벽에 여인들이 예수님의 무덤을 찾았습니다. 여인들이 예수님이 장사된 무덤에 이르렀을 때, 막아놓은 돌이 굴려 옮겨져 있었습니다. 여인들은 조심스럽게 무덤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이번엔 더 놀라운 일을 목격합니다. 예수님의 시신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여인들은 근심하였습니다. 그때 문득 눈부신 옷을 입은 두 남자가 그들 앞에 서 있었습니다. 천사들이 말합니다. “어찌하여 살아 있는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그분은 무덤에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다. 갈릴리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하신 말씀을 기억하여라.” 천사들의 말을 들은 여인들은 한순간에 예수님에 관한 모든 것들이 새롭게 다가오면서 감당할 수 없는 두려움에 사로잡혔습니다. 그들은 돌아가서 열 한 사도들과 다른 모든 사람에 이 소식을 알렸습니다. 하지만 사도들은 여인들의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아니 믿을 수 없었습니다. 여인들의 이야기가 “허탄하게” 들렸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베드로는 달랐습니다. 그는 곧장 무덤으로 달려갔습니다. 여인들의 말대로 무덤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베드로는 열 한 제자 중에 처음으로 예수님 부활의 현장을 목격했습니다. 여인들의 말이 사실임을 두 눈으로 확인하며 깜짝 놀랐습니다. 그리고 베드로는 어떻게 합니까? “그는 일어난 일을 이상히 여기면서 집으로 돌아갔다.”
왜 그냥 집으로 갔을까요? 베드로는 예수님의 부활하셨음 전혀 생각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시신이 없어진 것을 이상하고 놀랍게 여길 뿐이었다. 예수님의 부활에 관한 첫 번 이야기는 뜻밖에도 무미건조합니다. 예수님이 여전히 시신으로 무덤에 계신 것과 전혀 다르지 않습니다. 누가복음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조금씩 설명과 분위기는 다르지만, 마태, 마가, 요한의 복음도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제자들의 이러한 상태는 “믿지 아니하나”라는 표현에 담겨 있습니다. 예수님은 고난과 죽음과 부활을 제자들에게 계속해서 예고하시며 말씀하셨지만, 예수님이 실제로 부활의 주님이 되심을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믿고 받아들이고 기뻐하고 감격하게 된 것은 모두 부활하신 주님을 직접 만난 이후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듯 도마가 의심이 많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다른 제자들도 똑같았습니다. 단지 도마는 예수님이 자신을 보이신 현장에 없었기 때문에 자신도 똑같이 예수님의 손과 발을 봐야겠다고 하였을 뿐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직접 보았을 때 그도 똑같이 믿었습니다.(요 20:25)
오늘 우리는 부활절을 맞아 감사와 기쁨으로 경배와 찬양을 드리며 부활의 주님을 예배합니다. 하지만 우리 자신에게 물어봅시다. 진실로 부활의 믿음과 소망이 있습니까?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들처럼 예수님의 부활의 몸을 직접 만지고 볼 수 없습니다. 그러니 우리에게는 제자들보다 더 큰 믿음이 필요합니다. 처음 제자들이 부활의 처음 소식을 믿지 못했다면 우리가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것이 결코 작은 일이 아닙니다. 이 믿음은 단지 믿겠다고 해서 생기지 않습니다. 우리의 믿음조차 은혜로 가능합니다. 주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우리는 결코 진실한 부활의 백성이 될 수 없습니다. 부활의 주님을 만나기 전까지는 모두 의심뿐이었습니다. 의심이 지배하는 세상이었습니다. 그러나 부활의 믿음을 가질 때 죽음이 생명으로, 절망이 희망으로, 두려움이 용기로 변화되었습니다.
교회는 흔히 영혼의 병원으로 비유되곤 합니다. 때로는 구원의 방주에 비유되기도 합니다. 때로는 군대의 캠프에 비유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교회의 건물은 무덤이기도 합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은 박해와 고난의 시대에 지하 무덤을 교회로 삼았습니다. 오직 빛이신 그리스도를 의미하는 기름불로 어둠을 밝히며 무덤을 그리스도의 부활의 생명의 자궁으로 삼았습니다. 오늘 우리가 이 아름다운 성소에서 예배할 때 부활의 믿음이 깊어지며, 희미했던 부활의 믿음이 회복되고, 부활의 주님의 거룩한 임재하심 속에서 부활의 백성임을 선포합시다. 우리가 세례를 받았다는 것은 죽음의 무덤에서 새 생명의 부활의 성도로 태어났다는 증거입니다. 부활은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이유입니다. 부활은 우리가 예수님을 따르는 이유입니다. 부활은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입니다. 부활의 믿음이 없다면 교회는 무덤일 뿐입니다. 부활의 믿음으로 우리 교회가 생명의 집으로 새로워집시다.
우리가 크게 오해하는 것은 구원이 우리의 믿음의 목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단지 우리를 구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은 새로운 출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어서 구원을 얻었을 뿐만 아니라, 구원을 얻어 부활의 백성이 되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를 구원하심에 머물지 않고 우리가 구원받은 자로서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요,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이 땅에서 천국을 사는 삶으로 부르십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의 믿음의 핵심이고 기초입니다. 부활의 믿음은 우리의 믿음을 살아있게 하며, 참되게 합니다. 부활의 주님을 믿는 우리에게 무덤은 없습니다. 우리는 부활의 백성입니다. 무덤 같은 인생을 살지 맙시다. 코로나로 지치고, 무너지고, 왜곡되고, 의심하고, 혼란스럽고 고통스러운 상처와 아픔의 무덤을 넘어서 밝은 승리의 삶, 승리하는 부활의 백성으로 나아갑시다.
부활의 주님은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부활의 믿음은 역사적으로 부활하신 과거의 사건, 현재 함께하시는 현재적 임재, 승리의 주로 다시 오실 미래의 통치에 대한 믿음입니다. 부활의 주님은 거룩하신 영으로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보아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을 것이다.”(마태 28:20) 부활은 예수님의 모든 말씀의 언약이 성취되었음을 보여줍니다. 세상 끝 날까지 함께 하시겠다는 약속을 믿을 수 있습니다. 우리 주님 부활하셨습니다. 무덤을 열고 나오셨습니다. 죽음을 이기시고 영원한 생명을 가져오셨습니다. 부활의 주님과 함께 승리하는 삶을 향해 힘차게 나아갑시다. 부활의 능력과 소망을 가지고 나아갑시다. 부활의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4. 다듬으심
1) 주일 예배를 통해 경험하고 감동받거나 느낀 것은 무엇인가요?
2) 나의 삶에 진실로 부활의 믿음과 소망이 나타나고 있습니까? 함께 나눠봅시다.
3) 부활의 주님이 나에게 기대하시는 모습은 무엇인가요?
4) 앞으로 한 주간 삶 속에서 말씀을 어떻게 적용할지 구체적으로 한 가지만 나눕니다.
5. 들어쓰심
1)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기 위한 결단과 헌신의 기도하기
2) VIP(전도대상자), 개인, 가정, 교회, 선교, 나라를 위한 합심중보기도
6. ■가정: 말씀나눔 ■소그룹: 말씀나눔/ 소식나눔 ■헌금찬송 164장/ 주기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