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312 동수교회 3부 예배 실황 영상 "목마른 내 영혼 영생수를 갈망합니다"

작성 동수교회
날짜 2023-03-12
설교한 날
2023/03/12 일
성경 본문
요한복음 4:5-42
설교
주학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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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마른 내 영혼 영생수를 갈망합니다 (요한복음 4:5-42)

 

1. 환영과 찬양
    ◾ 기쁨으로 서로 환영하며 축복합니다. 잠시 교제의 시간을 가집니다. 
    ◾ 찬송  25장      ◾ 복음송  우물가의 여인처럼
    ◾ 기도  맡은 이 혹은 합심기도

 

2. 먼저오심 
    1) 지난 한 주간의 이야기(행복, 고마움, 힘듦)를 서로 나눕니다.
    2) 지난 한 주간 어떤 기도를 했는지 서로 이야기합니다.

 

3. 만나주심 
    ◾ 성경본문 : 요한복음 4:5-42

 

예수님은 유대를 떠나 다시 갈릴리로 가십니다. 이때 예수님은 갈릴리로 가시기 위해 뜻밖의 길을 택하셨습니다. 이 결정에는 그렇게 해야만 했다는 예수님의 의도적이고 거룩한 뜻이 담겨 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유대 땅에서 갈릴리를 오갈 때에 부정한 땅 사마리아를 통과하지 않고 빙 둘러서 다녔습니다. 그러니 예수님 일행이 사마리아로 통과한 것은 아주 특별한 일이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이 사마리아 지역으로 들어가셔서 잠시 쉬신 곳이 수가라는 마을입니다. 이 마을에는 야곱의 우물이 있었습니다. 우물은 팔레스틴 땅에서 가장 소중한 자산입니다. 우물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 수가 동네 사람들은 야곱의 우물이 자부심이었고 자랑이었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수가성에 들어갔을 때는 여섯 시쯤이었고, 매우 지친 상태였습니다. 여섯 시는 정오를 가리킵니다. 예수님은 먹을 것을 구하러 제자들을 보내셨고, 피곤하신 몸으로 우물 곁에 앉아 계셨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이 시간과 장소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마침 사마리아 여인이 물을 길으러 옵니다. 이미 제자들은 마을로 들어가서 없습니다. 예수님은 그 여인에게 물을 좀 달라고 하십니다. 이 여인은 예수님께 반문합니다.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9절) 당시 사마리아 사람들은 자신들이 유대인들의 멸시를 받는 것과 유대인들이 자신들과 상종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이곳으로 거의 다니지 않으며 사마리아인들도 유대인들의 출입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지역과 성별, 종교와 역사, 그리고 인종의 높은 장벽이 둘러쳐져 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 남자가 자신에게 물을 달라고 하니 깜짝 놀랄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이 대답하십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라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10절) 

 

여인은 예수님의 말씀에 어리둥절해 다시 묻습니다. “주여 물 길을 그릇도 없고 이 우물은 깊은데 어디서 당신이 그 생수를 얻겠사옵나이까? 우리 조상 야곱이 이 우물을 우리에게 주셨고 또 여기서 자기와 아들들과 짐승이 다 마셨는데 당신이 야곱보다 더 크니이까?”(11-12절) 이 우물은 유서 깊은 야곱의 우물이고, 여기엔 두레박도 없는데 어떻게 자신에게 생수를 줄 수 있느냐는 말입니다. 우물을 파서 실제로 생수를 마시게 한 야곱보다도 더 위대할 수 있겠느냐고 묻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13-14절) 이 말씀에 여인의 눈이 확 뜨입니다. 그리고 즉시 구합니다. “주여 그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으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15절) 한 번 마시면 다시는 목마르지 않은 샘물이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이 여인이 찾고 바라던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순간 예수님은 전혀 예기치 않은 말씀을 던지십니다. “가서 네 남편을 불러 오라.”(16절) 여인이 대답합니다.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17절) 예수님의 말씀이 이어집니다. “네가 남편이 없다 하는 말이 옳도다. 너에게 남편 다섯이 있었고 지금 있는 자도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도다.”(17-18절) 여자가 대답합니다. “주여 내가 보니 선지자로소이다.”(19절)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시려고 일부러 이곳으로 오셨습니다. 매일 정오의 시간은 이 여인이 우물에서 물을 길어 올리는 시간이었습니다. 왜 정오입니까?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한낮은 너무 뜨거워서 일할 수 없습니다. 여인들은 저녁이 되어야 우물가에 모여 물을 긷고, 이웃을 만나고, 마을의 모든 이야기를 나눕니다. 하지만, 사마리아 여인은 동네 여인들의 유일한 소통과 나눔의 자리인 우물가 모임에 끼어들 수 없었습니다. 그는 일부러 아무도 오지 않는 정오 시간에 홀로 우물가에 와서 조용히 물을 길어야 하는 외톨이였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인생 막장의 막장까지 갈 수밖에 없었던 가련하기 그지없는 여인이었습니다. 삶에 희망도 없었고, 자존감도 무너졌으며, 생존을 위해 허덕여야 하는 여인입니다. 아픔이 지나쳐 상처로 진물이 나는 여인이었습니다. 대인 기피증으로 사람 만나는 것이 두려운 여인이었습니다. 낙인이 찍혀 친구조차 하나 없는 외로운 여인이었습니다. 머리에 이고 온 물동이에는 이 모든 것이 담겨 있었습니다. 끝없는 인생의 갈증에 목이 탄 이 여인은 아무도 오지 않는 정오에 우물을 찾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자신은 어떤 물동이를 지고 있습니까? 아무리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인생의 깊은 갈증과 목마름에 허덕이고 있지 않습니까? 그 갈증을 채우기 위해 이 남편도 잡았고, 저 남편도 잡았지만, 우리의 갈증은 채워지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남편’은 히브리어로는 ‘바알’이라는 단어입니다. ‘주인’이란 뜻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서 매혹되었던 우상이 바알이었습니다. 이 여인의 갈증을 채워줄 바알은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끝없는 갈증에 목이 타는 죄인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우리의 자화상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재물이 우리의 진정한 주인이 될 수 없었습니다. 명예도 바알이 될 수 없었습니다. 인기도 바알이 될 수 없었습니다. 그 누구도, 그 무엇도 진정한 주인이 될 수 없었습니다. 어느 것도 우리의 갈증을 채우지 못했습니다. 우리의 주인은 누구입니까? 우리의 남편은 무엇입니까?

 

생명수를 마시기 전까지는 누구도 영혼의 만족함과 삶의 기쁨을 누릴 수 없습니다. 생명수를 마시기 전까지 우리는 여전히 상처와 고통과 아픔과 소외된 삶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영혼의 물동이는 생명수로 채워질 때 비로소 치유되며 회복되고 갈증이 사라집니다. 예수님의 물음 앞에 사마리아 여인은 누구에게도 들추어내고 싶지 않은 자신의 깊은 수치와 어둠의 상처와 고통을 예수님 앞에서 그대로 드러내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은 바로 이 순간을 위해 이곳으로 찾아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여인의 영혼이 절실하게 갈망하였던 영원히 목마르지 않은 생수를 주시려고 수가성 우물가로 정오에 찾아오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수가 성의 사마리아 여인을 찾아오셨던 예수님은 지금 이곳에 찾아와 계십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한 진정한 주인이십니다. 우리의 진정한 신랑이십니다. 다시는 목마르지 않을 생명수로 우리에게 다가오셨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상처와 아픔과 고통과 실패와 부끄러움을 모두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죄로 썩은 우리를 치유하시고 회복케 하시려고 오셨습니다. 생명수를 부어 주시려고 오셨습니다. 그러니 주님께 모두 내놓으십시오. 예수님은 죄로 막힌 무거운 장벽을 깨트리시고 우리에게 다가오셔서 임마누엘 하나님이 되셨습니다. 오직 우리 주 예수님만이 영원히 목마르지 않은 솟아나는 샘물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생명수이십니다. 우리를 기다리시는 주님께로 마음을 열고 달려가야 합니다. 

 

이 여인은 자신의 모든 비밀을 알고 계신 예수님께 고백합니다. “주여 내가 보니 선지자로소이다.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19-20절) 다섯 남편의 이야기에서 갑자기 예배로 화제가 바뀝니다. 사실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는 혼인 관계와도 같았습니다. 이 언약을 지키고 지속하기 위한 최우선의 일은 예배였습니다. 놀랍게도 이 여인의 예배에 대한 마음과 관심은 살아 있었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선포하십니다.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23-24절)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사마리아 여인의 눈이 번쩍 뜨였습니다. 그리스도가 오시면 영과 진리의 예배를 알려주실 것을 기대합니다.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알려 주시리이다.”(25절) 예수님이 선언하십니다. “너에게 말하고 있는 내가 그다.”(26절) 

 

예수님 자신이 곧 그리스도 메시아라는 말씀을 듣은 사마리아 여인은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로 들어가서” 외칩니다. “내가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서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28-29절) 이 여인의 대인 기피증은 사라졌습니다. 자기가 해야 할 사명을 발견했습니다. 이렇게 이 여인은 사마리아 최초의 전도자가 되어 그리스도를 증언하였습니다. 여인의 증언을 들은 동네 사람들은 예수님께로 몰려왔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 더 머물기를 요청하였고, 예수님이 이틀을 머무시는 동안 예수님이 세상의 구주이심을 알고 예수님을 믿는 자가 더욱 많아졌습니다. 

 

이것이 예배입니다. 이것이 부흥입니다. 이것이 변화입니다. 생명수이신 예수님을 만남으로 간절한 인생의 갈증이 채워지고, 인생의 무거운 짐이 벗어집니다. 어떤 상황, 어떤 위기에도 우리는 예배를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에게 예배의 열정과 간절함이 타오르고 있습니까? 참된 예배를 사모하십니까? 예배의 회복을 열망합니까? 주님께 나아오십시오. 영혼의 우물가로 나아오십시오. 생명수 그리스도를 만나 치유되고 감격하고 채워지는 것이 예배의 은혜입니다. 인생의 참 주인을 만난 우리에게 세상의 물동이는 필요 없습니다. 영과 진리의 예배자는 사명을 발견합니다. 구차한 인생이 영광의 전도자가 됩니다. 물동이를 던져 버리고 세상으로 달려갑니다. 영원한 생명수 예수님을 증언합니다. 이것이 예배입니다. 목마른 내 영혼 주님을 갈망합니다. 오늘도 예배하며 생수를 갈망하는 우리에게 생명수 은혜와 성령의 생수의 강이 차고 넘치기를 축복합니다. 

 

4. 다듬으심
    1) 주일 예배를 통해 경험하고 감동받거나 느낀 것은 무엇인가요?
    2) 내 인생의 물동이는 무엇인가요? 자유롭게 나눠봅시다.
    3) 예수님께 나아오기를 방해하는 나의 요소는 무엇이 있을까요?
    4) 앞으로 한 주간 삶 속에서 말씀을 어떻게 적용할지 구체적으로 한 가지만 나눕니다.

 

5. 들어쓰심 
    1)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기 위한 결단과 헌신의 기도하기
    2) VIP(전도대상자), 개인, 가정, 교회, 선교, 나라를 위한 합심중보기도

 

6. ◾ 가정 : 말씀 나눔     ◾ 소그룹 : 말씀나눔/ 소식나눔/ 헌금찬송 309장/ 주기도문

 

7. 금주의 암송구절: 금주의 암송구절을 함께 외웁니다.
    ◾ 여호와여, 내 입에 경비병을 세우시고 내 입술의 문을 지키소서.(시편 14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