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환영과 찬양
◾ 기쁨으로 서로 환영하며 축복합니다. 잠시 교제의 시간을 가집니다.
◾ 찬송 40장 ◾ 복음송 위로하여라 ◾ 기도 맡은이 혹은 합심기도
2. 먼저오심
1) 지난 한 주간의 이야기(행복, 고마움, 힘듦)를 서로 나눕니다.
2) 지난 한 주간 어떤 기도를 했는지 서로 이야기합니다.
3. 만나주심
◾ 성경본문 : 마태복음 11:16-17, 고린도후서 1:3-5
서로 사랑하는 삶은 우리가 이 땅에서 천국을 세우고 천국을 누리는 삶의 본질입니다.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의 성도들에게 종말이 다가오고 있으므로,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서로 위로 하십시오.”(살전 4:18)라고 권면합니다. “서로 위로함”은 성도의 삶에서 언제나 필수적인 사랑의 삶의 방식입니다. 위로는 항상 슬픔과 아픔과 고난의 상황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고난이 없고 문제가 없다면 위로도 필요 없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선교 활동을 하면서 극심한 고난과 위기와 고통을 겪어야 했습니다(고후 11:23-29).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나는 여러분을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우리의 온갖 환난 가운데서도, 나에게는 위로가 가득하고, 기쁨이 넘칩니다.”(고후 7:4)라고 고백했습니다.
우리는 코로나의 위기와 역경을 이겨오면서 성도의 위로가 얼마나 중요한지 절실히 경험하였습니다. 서로 위로하지 않으면서 서로 사랑할 수 없음을 깨달았습니다. 성도는 항상 모든 상황에서 세상과 문제를 보는 눈이 달라야 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 달라야 합니다. 그 핵심은 모든 상황을 사랑의 삶의 기회로 보는 것이며, 그중의 하나가 “서로 위로하는 삶”입니다. 우리가 서로 위로하는 삶을 살아야 하며, 서로 위로할 수 있는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의 주님은 위로의 주님
우리의 주님은 위로의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하나님은 자비의 하나님이시며, 또한 위로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과 한 분이신 성자 예수 그리스도님은 위로의 주님이시며 위로의 구세주이십니다. 온 인류를 위한 위로자로 오신 분이 바로 우리의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은 위로의 천국 복음을 선포하셨습니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마 5:4) 그분이 팔레스틴의 땅을 거니실 때 백성들은 위로를 받았습니다. 주님은 치유하시고, 어루만지시고, 함께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진정한 위로의 희생 제물로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습니다. 누구든지 주님 앞에 나오면, 십자가 아래서 위로를 받는 은혜와 생명의 길을 열어놓으셨습니다. 바울은 말씀합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치는 것과 같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의 위로도 또한 넘칩니다.”(고후 1:5) 진정한 위로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누리는 위로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을 찬양합시다. 그는 자비로우신 아버지시요, 온갖 위로를 주시는 하나님이시오, 온갖 환난 가운데에서 우리를 위로하여 주시는 분이십니다.”(고후 1:3-4) 우리의 아버지 하나님은 자비로우시며 온갖 위로를 주시는 하나님입니다. 우리가 위로를 얻고 힘을 얻을 수 있는 근원은 하나님이십니다. 온갖 환난 중에도 우리는 하나님의 위로를 받을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 주님의 위로의 품으로 나아오십시오. 삶의 무게에 지쳐있습니까? 슬픔에 잠겨 있습니까? 삶이 우울해지고 소망이 없습니까? 마음의 상처가 아물지 않습니까? 꿈이 사라지고 어둠의 절망이 짙어지고 있습니까? 경제적 어려움으로 살길이 보이지 않습니까? 죄의 수렁에서 헤매고 있습니까? 주님께 나아오십시오. 주님이 위로해주십니다. 우리는 주님의 품에서 회복됩니다. 치유됩니다. 주님은 바로 당신을 고쳐주시려고 십자가의 징계를 받으셨습니다. 주님은 바로 당신을 위로해 주시려고 채찍을 맞으셨고, 온갖 고난과 수치와 모욕과 절망을 겪으셨습니다. 주님의 십자가가 우리를 위로합니다. 우리를 구원합니다. 우리를 치료합니다. 주님은 우리의 목자이십니다. 선하신 목자이십니다. 사랑과 위로의 목자이십니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믿음으로 주님 의지하십시오.
위로하는 교회 위로하는 성도
우리를 사랑하고 위로하시는 하나님은 우리가 아버지를 닮아 서로 사랑하고 위로하라고 하십니다. 주님의 위로를 서로의 위로로 확장하는 것이 성도의 삶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받는 그 위로로, 우리도 온갖 환난을 당하는 사람들을 위로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치는 것과 같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의 위로도 또한 넘칩니다.”(고후 1:4-5) 사도 바울은 우리가 사람들을 위로할 수 있다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이미 하나님의 위로를 받았고, 받고 있으며, 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리스도의 고난이 넘치듯,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의 위로도 넘치므로(고후 1:5) 우리도 위로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감사하고 찬양하자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서로 위로하기 위해 먼저 온 마음을 다해 위로의 주님을 찬양합시다. 어떤 상황에서도 주님을 찬양합시다. 주님이 위로하실 수 없는 아픔은 없습니다. 주님이 위로하실 수 없는 슬픔은 없습니다. 주님이 위로하실 수 없는 고통도 없습니다. 그리고 주님이 주시는 그 위로와 사랑의 힘으로 우리도 서로 위로할 수 있습니다.
1. 우리는 함께함으로 위로합니다. 바울 사도께서 “자비와 위로의 하나님”(고후 1:3)이라고 하셨을 때 “위로”라는 단어는 곁에서 함께해준다는 뜻입니다. 힘들고 어려운 상황이 생겼을 때 그 사람을 이해하고, 그의 아픔과 슬픔과 고통의 자리에 함께하는 것입니다. 몸과 마음이 함께하고 같아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고 위로하시기 위해 친히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를 지심으로 우리와 함께하셨습니다. 인간의 아픔과 고통과 죄의 저주를 그대로 자신의 고통으로 겪으시고 당하셨습니다. 온전히 우리와 같아지셨고 함께하셨습니다. 이것이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고 위로하신 방법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춤추지 않고 곡하지 않는 세상입니다. 주님의 말씀과 똑같습니다.(마 11:17) 공감이 사라지고 위로가 사라진 시대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주님은 완전한 우리와 함께하시고 우리를 위로해 주셨습니다. 주님은 우리와 똑같이 찔리셨고, 상처를 입으셨고, 징계를 받으셨고, 채찍에 맞으셨습니다. 우리가 서로 위로함은 주님이 우리와 함께해주셨듯이, 우리도 누군가와 함께하는 것입니다. 슬퍼하고 아파하는 사람과 함께해주는 것입니다. 고통과 역경을 당한 사람과 함께해주는 것입니다. 함께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아픔과 상황에 공감하고 이해하며 손을 잡아주는 것입니다. 함께하는 것이 큰 위로입니다.
2. 우리는 따뜻한 말과 행동으로 위로합니다. 우리의 위로는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행동이 될 때 진정한 위로가 됩니다. 서로 위로하는 것은 사랑의 행위이며, 사랑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이기 때문입니다. 구체적으로 손을 내밀어 잡아주십시오. 굶주린 사람에게는 먹을 것을 나누어 주십시오. 슬픔에 빠진 사람은 기도와 위로의 말로 잡아주십시오. 특별히 공감하고 잘 들어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충고와 비판은 전혀 위로가 되지 않습니다. 단지 상대방이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울지 공감하고 들어주어야 합니다. 상대의 어려움을 자기의 일로 생각하고, 자신의 아픔으로 여기며, 자신의 고통으로 느낄 때 구체적이며 실제적으로 행동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진정한 위로입니다.
3. 우리는 믿음을 지킴으로 위로합니다.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는 데살로니가 교회의 성도들에게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여러분을 보고, 우리의 모든 곤경과 환난 가운데서도, 여러분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위로를 받았습니다.”(살전 3:7) 비록 환난 가운데 있었지만, 성도들이 굳건하게 믿음을 지키는 모습으로 큰 위로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코로나를 지나면서 많이 경험했습니다. 예배의 자리에서 얼굴을 보는 것 자체가 서로에게 얼마나 위로가 되었는지 모릅니다. 온라인으로 예배에 참여하며 댓글로 이름을 올리는 것을 보면서 우리는 설로 위로를 받고 힘을 얻었습니다. 우리는 자신이 믿음을 견고하게 지키며 거룩하게 성장하고 변화되는 것이 다른 성도들에게 큰 위로가 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굳게 서서 믿음을 지키며, 믿음을 사는 모습이 형제자매들에게 큰 위로가 됩니다.
사도행전에는 바나바라는 지도자가 나옵니다. 바나바의 원래 이름은 요셉이었습니다. 바나바는 그의 별명인데 “위로의 아들”이란 뜻입니다. 바나바는 초대 교회에서 정말 귀한 존재였습니다. 바나바의 위로와 격려가 없었다면 바울이 초대 교회의 거룩한 지도자로 세워지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바나바는 초대 교회의 박해와 갈등과 문제 속에서도 믿음을 굳게 지키며 헌신함으로 많은 성도에게 용기와 위로와 희망을 주었습니다. 그의 믿음으로 교회는 건강하게 세워지며 성장했습니다. 믿음을 잘 지켜 위로와 희망을 주는 바나바가 넘쳐나는 우리 교회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위로의 삶을 확장합시다. 우리는 먼저 성도들 사이에 서로 위로합시다. 우리 중에 위로가 필요 없는 분은 단 한 명도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서로 위로가 필요합니다. 먼저 다가서고 손을 내미십시오. 우리 가운데 위로받지 못한 사람이 있게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됩니다. 바울은 빌레몬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형제여, 나는 그대의 사랑으로 큰 기쁨과 위로를 받았습니다. 성도들이 그대로 말미암아 마음에 생기를 얻었습니다.”(몬 1:7) 서로 위로함으로 우리 안에 생기가 돌게 되기를 바랍니다. 위로는 격려가 되며, 위로는 치유가 되며, 위로는 용기가 되며, 위로는 소망이 됩니다. 받기보다 주는 삶이 행복합니다. 위로도 마찬가지입니다. 먼저 위로하십시오. 주님이 주시는 기쁨과 행복이 찾아올 것입니다. 서로 위로하십시오. 희망의 꽃이 활짝 필 것입니다. 또한 우리의 위로를 세상으로 확장합시다. 이것이 우리가 행복해지는 거룩한 길입니다. 우리의 행복을 세상과 나누며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가는 건강한 믿음의 성도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4. 다듬으심
1) 주일 예배를 통해 경험하고 감동받거나 느낀 것은 무엇인가요?
2) 따뜻한 위로를 받은 적이 있나요? 함께 나눠봅시다.
3) 함께 위로하기 위한 나의 노력은 무엇이 있을까요?
4) 앞으로 한 주간 삶 속에서 말씀을 어떻게 적용할지 구체적으로 한 가지만 나눕니다.
5. 들어쓰심
1)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기 위한 결단과 헌신의 기도하기
2) VIP(전도대상자), 개인, 가정, 교회, 선교, 나라를 위한 합심, 중보기도
6. ◾ 가 정 : 말씀나눔 ◾ 소그룹 : 말씀나눔/ 소식나눔/ 헌금찬송 406장/ 주기도문
7. 금주의 암송구절 : 금주의 암송구절을 함께 외웁니다.
◾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요한복음 13:34-35)